망할 거라던 기득권 노조 벽 뚫고…광주모터스 '無파업 공장' 시동

입력 2021-09-14 17:39   수정 2021-09-23 16:07


“광주형 일자리 모델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2018년 10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내놓은 논평이다. 기존 자동차회사 근로자 임금의 40%만 지급하는 대신 새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광주형 일자리 사업’에 대한 비난이었다. 민주노총은 이후에도 수차례 이 사업을 접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하지만 광주글로벌모터스(GGM)의 첫 상품인 캐스퍼가 공개되자 소비자 관심은 폭발했다. 현대자동차가 지난 1일 전용 사이트를 개설한 이후 지난 13일까지 70만 명이 방문했다. 사전예약이 시작된 14일 오전에는 방문자가 폭발적으로 늘어 사이트가 마비됐다. 업계에선 GGM의 실험이 성공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전망과 함께 한국 자동차산업을 완전히 뒤흔들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23년 만에 탄생한 완성차 공장
GGM의 탄생은 ‘난항의 연속’이었다. 2014년 처음 아이디어가 나온 뒤 한동안 진행되지 않다가 2018년 현대차가 지분투자 의향서를 광주광역시에 제출하면서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현대차 노조와 상급단체인 민주노총은 이 사업을 집요하게 방해했다. 현대차가 참여를 철회하지 않으면 총파업을 강행하겠다고 협박하기도 했다.

이 와중에 이 사업을 논의하는 한 축이었던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은 여러 차례 무리한 요구를 하거나 논의에서 빠지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사업 논의에 참여했던 한 인사는 “현대차 노조는 연봉 3500만원 수준의 자동차 회사가 만들어지면, 자신들의 고임금이 정당화될 수 없지 않을까 걱정했다”며 “한국노총은 민주노총 등의 눈치를 보면서 미온적으로 대응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여러 차례 결렬 위기를 넘어선 뒤 2019년 1월 투자협약식이 열렸고, 같은 해 9월 법인이 설립됐다. 지난 4월 공장이 완공됐고, 시험생산이 시작됐다. 1998년 삼성자동차(현 르노삼성자동차) 부산공장 이후 23년 만의 국내 자동차 생산공장이다. 올해 1만6000대, 내년 7만 대를 생산하는 게 1차 목표다. 이후 연 10만 대 규모의 공장을 증설해 20만 대 체제를 구축할 계획이다. 채용 인력을 현재(580명)의 두 배 수준인 1000명으로 늘릴 예정이다.
경차인데 지능형 안전기술 장착
캐스퍼는 현대차가 생산하는 첫 경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다. 가격은 스마트 트림(세부모델) 기준 1385만원부터 시작한다. 다른 차량에 비해 가격은 저렴하지만 다양한 편의사양 및 안전사양을 갖췄다. 세계 최초로 운전석 시트를 완전히 접는 ‘풀 폴딩 시트’를 적용한 게 대표적이다. 2열 시트를 최대 160㎜ 앞뒤로 옮길 수도 있다. 뒷좌석을 앞으로 밀면 301L 크기의 적재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가솔린 1.0 엔진을 적용했고, 최대 76마력의 힘을 낼 수 있다. 연비는 L당 14.3㎞다. 가솔린 1.0 터보 모델을 선택하면 100마력의 힘을 낼 수 있다. 캐스퍼 모든 트림에는 지능형 안전기술인 전방 충돌방지 보조와 차로 이탈방지 보조, 차로 유지 보조 등이 적용됐다. 국내 경차 중 최초다.

업계에서는 GGM이 불필요한 인건비를 줄이는 데 성공했기 때문에 합리적인 가격과 뛰어난 성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었다는 분석이 나왔다. 한 관계자는 “한국에서 경차가 워낙 인기가 없었기 때문에 캐스퍼를 두고도 우려가 많았다”며 “GGM은 합리적인 인건비라는 강점을 기반으로 이런 우려를 정면돌파했고, 소비자의 많은 관심을 얻는 데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GGM 실험 성공할까
자동차업계에서는 캐스퍼가 성공적으로 시장에 안착하면 한국 자동차산업의 판이 뒤집힐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현대차와 기아 등 기존 자동차업체 대비 40% 수준인 임금(연봉 3500만원)을 준다는 시도 자체가 고임금에 신음하는 한국 자동차업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이유다. 노조를 만들지 않고, 차량 누적 생산량이 35만 대에 도달할 때까지 임금 및 직원 복지 제도에 크게 손대지 않겠다는 노사 합의도 마찬가지다.

캐스퍼 판매 방식도 첫 실험이다. 국내 완성차업체 중 온라인으로 차량을 판매한 적은 없다. 많은 소비자가 온라인으로 차량을 구매하기를 원하고, 불필요한 비용을 줄일 수 있지만 노조라는 걸림돌이 있었다. 판매노조가 자신들의 일거리가 줄어든다는 이유로 결사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앞으로는 온라인으로 자동차를 구매하는 게 일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며 “캐스퍼가 성공하면 다른 자동차업체들도 온라인 판매를 시작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도병욱/광주=임동률 기자 dod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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