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테슬라가 파는 것은 전기차 아닌 '서비스'다

입력 2021-09-16 18:16   수정 2021-09-17 01:55


격변의 시대다. 미국 가전업체 월풀의 최고경영자(CEO)인 마크 비처는 “피폐한 시대”라고도 불렀다. 미·중 분쟁, 글로벌 법인세 개편, 코로나19 등으로 어디에 공장을 지어야 할지, 공급망을 어떻게 재정립해야 할지 기업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살아남기도 힘들어지고 있다. 1965년 미국 S&P500 기업은 지수 내에 평균 33년 머물렀다. 2016년엔 평균 24년으로 줄었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 시니어 파트너들이 쓴 《위대한 기업의 2030 미래 시나리오》는 오랫동안 잘 작동했던 기존의 비즈니스 모델이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됐다고 진단한다. “차별화된 제품과 서비스를 판매해 뛰어난 성과를 제공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고, 고객은 이제 기업이 가장 비용 효율적인 배송센터와 생산공장 네트워크를 유지하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책은 먼저 비즈니스의 본질을 바꾸고 있는 세 가지 큰 힘을 파악한다. 첫 번째 힘은 환경 보호에 대한 열망과 불평등에 대한 불만이다. 정부에 맡겼던 이 역할을 사람들은 이제 기업에도 기대하기 시작했다. 두 번째는 경제 민족주의의 고조와 미국 패권주의의 지속적인 침식, 마지막 힘은 데이터와 디지털을 바탕으로 한 기술 혁명이다. 저자들은 “이 세 가지 힘이 글로벌 지형을 변화시키면서 리더들이 오랫동안 경쟁에 활용했던 전통적인 전략이 흔들리고 있다”고 진단한다. 그러면서 “엄청난 기회를 만들어내기도 한다”고 말한다.

이런 전제 아래 저자들은 아홉 가지 전략을 제시한다. 이는 △공익에 투자해 더 큰 주주 수익을 얻어라 △제품이 아니라 가치를 팔아라 △작은 몸집으로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라 △강한 파트너십으로 디지털 생태계를 구축하라 △고객 바로 옆에서 생산하고 공급하라 △글로벌 데이터 아키텍처를 구축하라 △날쌘 코끼리처럼 민첩하고 기민하게 움직여라 △인재를 사고 빌리고 연결하라 △변화와 혁신에 집중하라는 것이다.

브라질 화장품 기업인 나투라의 이름을 들어본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나투라가 보유한 브랜드인 이솝, 보디숍, 에이본 등은 널리 알려져 있다. 나투라는 2010년 이후 이들 브랜드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는데, 자연을 보호하고 사회적 역할을 하려는 점이 나투라와 일치했기 때문에 인수는 물론 회사 통합 작업이 훨씬 쉬웠다고 저자들은 분석한다. 나투라가 1969년부터 저소득층과 중산층을 위한 활동을 폈고, 1983년부터는 다른 회사보다 먼저 리필 패키지를 활용해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등 오랫동안 기업 이미지를 개선해왔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설명이다.

펩시코도 마찬가지다. 2006년 펩시코 CEO가 된 인드라 누이는 “우리의 성공, 우리가 일하는 지역사회와 더 넓은 세상의 성공은 서로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선언했다. 이후 펩시코는 과도한 설탕, 포화지방, 나트륨을 없애고 트랜스지방은 완전히 제거하는 등 제품을 더 건강하게 만들었다. 이런 노력은 주주를 비롯한 모든 이해 관계자에게 엄청난 이익을 가져다줬다. 2016년까지 ‘굿 포 유’ ‘베터 포 유’ 제품이 회사 매출의 50%를 차지해 10년 전 38%에서 크게 늘었다. 2006~2017년 펩시코의 총주주수익률(TSR)은 평균적인 S&P500 기업보다 두 배 가까이 높았다.

개인화된 서비스 제공은 제품을 파는 기업에도 필수적인 것이 됐다. 스타벅스 앱은 고객이 좋아할 만한 메뉴를 시간과 장소, 날씨에 맞게 추천한다. 소비자의 동의를 받아 쇼핑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한 결과다. 화장품 기업 로레알은 소비자가 스마트폰으로 피부를 찍으면 인공지능(AI)으로 분석해 피부 상태에 맞는 제품을 추천해준다. 햄버거 업체 버거킹, 전기차 업체 테슬라 등도 제품과 서비스를 함께 파는 회사로 발전하고 있다.

이렇게 책은 다양한 사례를 들어 숨가쁘게 체질을 바꾸고 있는 기업들의 모습을 비춘다. 물론 이런 전략을 실행하는 것은 결국 리더의 몫이다. 저자들은 리더에 대한 당부도 잊지 않는다. “오늘날의 리더는 이렇게 급진적인 새로운 사고방식을 수용해야 할 뿐만 아니라 회사 외부에서 아이디어와 인재를 찾고, 더 큰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 파트너십을 지속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컨설팅 업계에서 쓰는 용어와 추상적인 표현이 많아 책이 술술 읽히지는 않는다. 너무 많은 사례를 다루다 보니 분석이 피상적인 편인 점도 아쉽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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