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구식이라며 적용을 꺼려했던 리튬인산철(LFP) 양극재가 들어간 배터리가 주목받고 있다. LFP 양극재가 들어간 배터리는 주로 중국 배터리 기업들이 채용했었지만, 이제는 이를 사용하겠다는 전기차 기업이 늘고 있다. 잇단 화재 사건에 신기술 보다는 안정성을 이유로 구식을 찾는 것이다.
LFP 양극재는 구식 기술로 인식돼왔다. LFP 양극재는 한국 배터리기업이 사용하는 삼원계(양극재가 세 종류 금속으로 구성)나 사원계(양극재가 네 종류 금속으로 구성) 배터리 대비 에너지밀도가 낮기 때문이다. 대신 안전성은 높은 편이다. 또 원재료로 들어가는 금속도 삼원계나 사원계에 비해 저렴하다.
18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테슬라는 최근 LFP 배터리를 탑재한 모델3를 미국 시장에서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전까지 LFP 배터리가 탑재된 테슬라 차량은 중국 상하이 공장에서 생산돼 현지에서 판매되거나 유럽 지역으로 수출됐다. 2024~2025년께 자율주행 전기차를 출시하는 걸 목표로 하고 있는 애플도 LFP 배터리를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을 제외한 지역에서 가장 많은 전기차 배터리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는 LG에너지솔루션도 LFP 배터리 생산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까지도 전기차 생산 기업들의 LFP 배터리 채용은 비용 절감과 중국 시장 공략 차원으로 인식돼왔다. 개발된 지 오래된 LFP 배터리를 만들 때 필요한 철은 삼원계·사원계 양극재 구성 금속인 니켈, 코발트, 망간 등보다 가격이 싸기 때문이다. 개발된지 오래된 방식이기에 중국 배터리업체들은 기술력이 향상되기 전까지 LFP 배터리를 주력으로 생산해왔다. 이 시기 중국 정부는 보조금 차별을 통해 외국산 배터리가 자국 전기차 시장에 진입하는 걸 막는 방식으로 자국 배터리기업들을 지원했다.
이에 LFP 배터리는 중국에서나 쓰이는 저렴한 배터리로 치부됐지만, 최근 위상이 바뀌었다.
안전성 때문이다. 최근 LG에너지솔루션의 삼원계 배터리를 탑재한 현대차 코나EV, GM 볼트EV에서 연이은 화재가 발생하면서 각각 수조원대 비용이 들어가는 리콜이 실시된 바 있다. 문제는 리콜은 실시되지만 화재 원인이 속 시원하게 밝혀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때문에 삼원계 배터리에 대한 불안감이 가중됐고, 이는 LFP 배터리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잇따른 화재 사건은 삼원계·사원계 배터리의 안전성 문제로 이어졌고, 이는 양극재를 구성하는 금속 중 하나인 '니켈의 불안전성'을 부각시켰다. 양극재 내에서 니켈이 차지하는 비중을 높일수록 에너지밀도가 높아져 한동안 한국 배터리기업들 사이에서는 ‘니켈 함량 높이기’ 경쟁이 붙기도 했다. 다만 니켈은 불안정한 물질로 양극재 내 비중이 커질수록 발화 가능성도 높아진다.
니켈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진 반면, LFP 배터리의 낮은 에너지밀도를 극복하기 위한 기술 개발도 진행됐다. 특히 배터리 패키징 기술의 진화가 눈에 띈다. 배터리 4대 구성요소가 한 데 들어간 기본 단위를 셀이라고 하는데, 셀 여러 개를 묶어 모듈을 만들고 이 모듈 여러개를 다시 묶어 팩으로 구성한다. 전기차에는 이 팩 하나가 들어간다. 그러나 최근 중국 전기차 업체 BYD는 셀을 모듈로 묶는 과정을 없애고, 셀로만 팩을 구성하는 콘셉트를 공개하며 배터리셀 적용 효율을 기존 40%대에서 60%로 개선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 다른 이유로 LFP 배터리의 특허 만료가 꼽히고 있다. LFP 배터리와 관련한 특허가 워낙 복잡하게 얽혀 있어 수출하려면 상당한 비용이 발생했다. 그러나 내년 말이면 특허가 만료돼 중국 기업들이 LFP 배터리를 수출하는 게 더 수월해질 수 있다.
장정훈 삼성증권 연구원은 “글로벌 전기차 양극재 시장의 주도권은 여전히 하이(high·높은 비중의) 니켈에 있다”며 “LFP 배터리의 개선에도 불구하고 에너지밀도의 단점은 여전해, 완성차업체 입장에서 주행거리의 제약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LFP 배터리의 에너지밀도를 기존보다 높이는 기술이 LFP 배터리에 한정돼 사용하는 기술이 아니기에, 삼원계·사원계 배터리의 에너지밀도도 더 높일 수 있다는 말이다.
실제 LFP 배터리를 많이 만드는 중국에서도 CATL은 LFP 배터리보다 삼원계 배터리의 설비 증설을 더 공격적으로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를 두고 장 연구원은 “(중국) 내수 위주에서 글로벌 시장 공략을 준비하고 있는 글로벌 1위 업체의 전략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평가했다.
한경우 한경닷컴 기자 cas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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