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언론중재법)’ 개정안은 언론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와 ‘가짜뉴스’로 인한 피해 구제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맞추느냐가 핵심 쟁점이었다. 하지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측이 발의한 개정안은 피해 구제에 과도하게 방점이 찍혀 “언론·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최대 5배 징벌적 배상과 모호한 법 조항, 언론에 떠넘긴 고의·중과실 입증 책임 등이 주요 독소조항으로 꼽혔다. 국내 언론단체와 법조계를 비롯해 유엔 등 해외 언론·인권단체까지 나서 법안 철회를 요구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급기야 인권 전담 국가기구인 국가인권위원회마저 “언론 자유를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며 법안 수정을 요구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17일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해 우려를 나타낸 것도 국내외 언론·인권단체들과 비슷한 이유다. 인권위는 개정안이 통과되면 ‘가짜뉴스 피해 방지’라는 순기능보다 ‘언론 자유 위축’이라는 역기능이 더 클 것이라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개정안이 헌법의 가치인 ‘명확성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봤다. 인권위가 문제 삼은 조항은 ‘허위·조작 보도’의 개념과 ‘고의·중과실 추정’ 요건이다. 개정안은 허위·조작보도로 피해를 본 대상이 언론사에 최대 5배까지 징벌적 손해배상을 물릴 수 있도록 했다. 여기서 허위·조작 보도는 “허위의 사실 또는 사실로 오인하도록 조작한 정보를 언론 등을 통해 보도하거나 매개하는 행위”다.
인권위는 이 규정이 “추상적이고 모호하다”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객관적인 진실과 거짓을 구별하는 것은 어렵고, 현재 거짓인 것이 시간이 지나 판단이 바뀌는 경우도 있다”는 헌법재판소 판단을 인용했다. 그러면서 “보도에 일부 오류가 있더라도 어디까지를 허위 보도로 볼 것인지 확정하기 어렵다. 조작 보도의 개념은 자의적인 해석에 맡겨질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고의·중과실 추정 요건인 ‘보복적 허위·조작 보도’ 조항에 대해서도 “보복이란 개념을 명확히 판단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인권위는 ‘기사 내용과 다르게 제목·시각자료를 조합해 새로운 사실을 구성하는 등 기사 내용을 왜곡하는 경우’라는 개정안의 요건에 대해서도 “추상적이고 불명확하다”고 꼬집었다.
또 인권위는 “언론 보도 ‘매개’ 행위까지 처벌하는 것은 과도한 조치”라며 “네이버 등 포털을 언론중재법 처벌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인권위는 개정안의 대표 독소 조항인 언론 보도에 최대 5배 징벌적 손해배상을 물리도록 한 조항과 온라인상 기사 노출을 차단하는 열람차단청구권에 대해서는 별다른 입장을 내지 않았다.
인권위의 의견 표명에는 구속력이 없기 때문에 국회가 이를 따를 의무는 없다. 다만 휴먼라이츠워치(HRW) 등 국제 인권 단체를 비롯해 세계신문협회(WAN), 국제기자연맹(IFJ), 국제언론인협회(IPI) 등 해외 언론 단체들도 개정안을 반대한 데다, 국가 기구인 인권위까지 반대 뜻을 전해 27일 국회 통과를 앞두고 여야 간 공방이 더욱 치열할 것으로 전망된다.
양길성 기자 vertigo@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