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만원 안 갚았는데 사기 아니라고? "속일 의사 없었다면"

입력 2021-09-21 20:09   수정 2021-09-21 20:10


돈을 제때 갚지 않아도 빌릴 당시 상환할 의사나 능력이 있었고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면 사기죄가 아니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사기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벌금 5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의정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1일 밝혔다.

A씨는 2015년 B씨에게 2000만원을 빌린 뒤 갚지 않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A씨는 모 방송국 과장으로 일하며 6000만~7000만원의 연봉을 받고 있었다.

수사기관은 A씨가 돈을 빌려주면 한 달 안에 갚겠다고 했지만, 당시 2억700만원의 빚이 있어 상환이 어려울 것으로 판단했다.

1심과 2심은 A씨의 사기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1심은 "B씨는 A씨로부터 한 달 안에 돈을 변제받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해 돈을 대여했다"며 "A씨는 현재까지도 B씨에게 변제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 않다"고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2심 과정에서 A씨는 연 수입이 6000만원이 넘어 빌린 돈을 갚을 능력이 충분했고, 사기죄를 범할 고의가 없었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2심도 "사기죄의 성립에는 미필적 고의로도 충분하다"며 "A씨는 변제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인식하면서도 차용을 감행해 미필적 고의는 있었다"고 1심 판결을 유지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A씨가 돈을 갚을 의사와 능력이 없었다고 단정하기 힘들다며 사기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돈을 갚을 의사와 능력이 있었는데 제때 상환하지 않았다면 민사상 채무불이행으로 볼 수 있지만, 형법상 사기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게 대법원의 판례다. 빌린 사람이 거짓말로 돈을 갚을 수 있다고 말한 경우에만 사기죄가 성립할 수 있다는 것.

재판부는 A씨가 6000만~7000만원의 연봉을 받고 있었던 점, 2억700만여원의 빚을 독촉받던 상황이 아니었던 점 등을 근거로 A씨에게 변제능력이 있었던 것으로 봤다.

재판부는 "원심은 A씨에게 변제의사나 능력이 없고 차용금 편취에 관한 미필적 고의가 인정된다고 단정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며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장지민 한경닷컴 객원기자 newsinf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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