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방문하고 있는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22일(현지시간) 미국 주도의 반중(反中) 블록(전선)에 대해 “냉전적 사고”라고 비판했다. 이날 열린 한·미·일 외교장관회의에서는 중국을 겨냥해 공급망 확보를 위한 3국 간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중국 정부 입장을 옹호하는 듯한 정 장관의 발언이 한국 외교에 혼선을 초래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정 장관은 미국 뉴욕의 싱크탱크 미국외교협회(CFR) 초청 대담회에서 중국의 대외정책이 공세적이라는 평가에 대해 “20년 전 중국이 아니다”며 “경제적으로 강해지고 있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진행자가 한국, 일본, 호주 등을 중국에 맞서는 하나의 블록으로 구분하자 “그것(반중 블록)은 중국 사람들이 말하듯이 냉전시대 사고”라고 반박했다. ‘냉전식 사고’는 주로 중국이 쿼드(미국·일본·호주·인도 안보협의체) 등을 겨냥해 비판할 때 사용하는 표현이다. 전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유엔 총회 연설에서 미국을 겨냥해 “냉전식 제로섬 게임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 장관의 중국 옹호 발언으로부터 2시간40여 분 뒤 열린 한·미·일 외교장관회의에선 이와 상반된 논의가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국무부는 “다자 협력을 통해 기후 변화와 공급망 확보 등의 긴급한 글로벌 도전 과제에 대응하기 위한 한·미·일 간 협력을 심화하는 방안이 논의됐다”고 밝혔다. 반도체·배터리 등 핵심 기술의 공급망 확보는 미·중 간 갈등이 첨예한 부분이라는 점에서 중국을 겨냥한 논의가 있었다는 것을 암시한 것이다. 이 같은 내용은 한국 외교부 보도 자료에는 빠져 있었다.
최근 잇달아 무력도발에 나선 북한과 관련한 논의도 있었다. 외교부는 한·미·일 3국이 최근 한반도 상황에 대한 평가를 공유했다고 밝혔다. 다만 관련 논의는 대북 압박보다는 인도적 지원과 전날 문재인 대통령이 유엔 총회에서 언급한 종전선언에 더욱 초점이 맞춰진 것으로 보인다.
최영삼 외교부 대변인은 “창의적이고 다양한 대북 관여 방안에 대해 깊이 있게 논의가 이뤄졌다”며 “우리 측은 종전선언이 중요한 모멘텀으로 역할할 수 있다는 점을 설명했고 미국 측은 우리 설명을 경청했다”고 말했다. 정 장관은 앞서 CFR 대담회에서 “북한의 행동에 따라 제재를 완화하는 창을 열어놓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며 “미국은 제재 완화나 해제에 준비가 안 돼 있지만 우리(한국)는 이제 이를 검토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송영찬 기자 0ful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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