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양 장기로 불리는 체스는 가장 오래된 보드게임이다. ‘차투랑가’라는 인도의 게임이 유럽에 전해진 뒤 15세기에 국제 규칙이 확립되었다. 해마다 주니어선수권대회를 비롯한 다양한 세계대회가 열리고, 경기 인구가 수억 명에 이를 정도로 인기 높은 두뇌 스포츠다. 중편소설 《체스 이야기》 속 체스에 대한 설명 가운데 ‘어떤 책이나 작품보다 영속적이며, 모든 민족과 모든 시대에 속하는 유일한 게임이면서도, 지루함을 죽이고 감각들을 예리하게 하며 영혼에 긴장감을 주기 위해 신이 이 땅에 가져온 게임’이라는 대목이 눈길을 끈다.

어느 날 신부가 체스를 두다가 임종한 신자 집으로 달려가자 첸토비치가 상사와 체스를 두게 된다. 놀랍게도 첸토비치가 그 시합에서 상사를 이기고 뒤늦게 돌아온 신부와의 대결에서도 가볍게 승리한다.
놀란 신부가 첸토비치를 데리고 나가 여러 사람과 대결을 벌이게 했고, 첸토비치는 차례차례 다 물리쳐버린다. 유지들의 지원 아래 체스 대가를 6개월간 사사한 첸토비치는 시합마다 승리하더니 세계체스대회에서 우승하는 기염을 토한다.
이 소설은 세계 챔피언이 된 스물한 살의 첸토비치가 미국 순회 경기를 마치고 아르헨티나로 가는 배에서 닷새간 벌어지는 사건을 담았다. 앞부분에 첸토비치의 삶을 조명하다가 B박사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액자소설 형식을 취하고 있다.
B박사를 만나기 전에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의 생애를 훑어보면 소설에 더 공감하게 될 것이다. 츠바이크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섬유공장을 운영하는 아버지의 지원 아래 유복하게 자랐다. 부모가 유대인이긴 하지만 그의 집안 분위기는 유대교와 무관했다. 하지만 히틀러가 집권해 유대인을 학살하자 츠바이크는 유럽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정신의 근원이던 유럽을 떠나 영국과 미국을 거쳐 브라질로 건너갔다.
아르헨티나로 향하는 배에서 대결을 펼치는 두 사람은 모든 상황이 정반대다. 체스 외에는 모든 것에 무지해 ‘비인간적인 체스 기계’로 불리는 첸토비치는 어렸을 때 정신지체 현상을 보이다가 나중에 독재자가 된 인물들을 연상케 한다. B박사는 절대고립 상태에서 자신을 둘로 분리하여 대결하다 병적인 흥분 상태로 빠져들곤 한다. 교양 시민으로 살다가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고초를 겪었기 때문이다. 실전을 통해 실력을 쌓은 첸토비치와 상상 속에서 자신과 시합한 B박사, 과연 누가 승리할까.
《체스 이야기》는 츠바이크의 마지막 작품이다. 19세 때부터 시를 발표한 이후 다수의 시, 산문, 소설, 희곡을 쓴 그는 1941년에 자전적 회고록 《어제의 세계》에 이어 중편소설 《체스 이야기》를 완성했다. 히틀러 정부에 대해 절망하다가 1942년, 61세의 나이로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체스 이야기》를 읽으며 체스 게임과 나치의 횡포, 아픔을 겪은 유럽과 유대인을 통해 역사와 인간 심리를 탐구해보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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