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팍스 운영업체 스트리미의 이준행 대표(37·사진)는 지난 25일 회원들에게 ‘고객님께 드리는 글’이라는 전체메일을 보냈다. 그는 “이유 불문하고 면목이 없다”며 “임직원 전원이 죽을힘을 다했으나 결국 역부족이었다”고 고개를 숙였다. 그는 대원외국어고, 미국 하버드대 역사학과를 나와 컨설팅사 등에서 일하다가 2015년 스트리미를 창업했다.
이 회사는 블록체인 기반의 해외송금 업체로 출발했지만 국내외 규제에 막혀 사업을 펴보지 못했다. 차선으로 택한 것이 2017년 문을 연 고팍스였다. 고팍스는 단순한 거래 중개에 머물지 않고, 블록체인 관련 기술과 특허를 다수 확보해 업계 평판이 좋은 편이었다. 탈법 의혹이나 해킹 사고에 휘말린 적도 없어 이용자들에게서 ‘선비 거래소’라는 별명을 얻었다. 미국의 유명 블록체인 투자회사 디지털커런시그룹(DCG)은 지난 5월 고팍스 2대 주주로 올라섰다.
고팍스는 한 은행과의 제휴가 타결 직전까지 갔지만, 금융당국의 접수 마감 시한인 24일 오전 돌연 ‘불가’ 통보를 받았다고 이 대표는 설명했다. 실명계좌가 없다고 사업을 접어야 하는 건 아니다. 코인마켓을 운영하면서 실명계좌를 받아 당국에 다시 신고하면 원화마켓을 열 수 있다. 이 대표도 “실명계좌를 획득한 거래소만 살고 그 외에는 죽는다는 것은 오해”라며 “다시 출발선상에 선다는 마음가짐으로 실명계좌 획득에 노력하고, 기술과 보안에도 계속 투자하겠다”고 했다.
이 대표는 전날 임직원에게 좌절감을 토로했다고 한다. 그는 “업계에 만연한 편법 한 번 쓰지 않았고 ‘한국에서 고팍스같이 사업하면 망한다’는 말까지 수없이 들었는데 상실감이 크다”고 했다. 그러면서 “묵묵히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믿고 포기하지 않을 테니 한 번만 더 저를 믿어달라”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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