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 정상이 만나는 목적은 북한 핵문제의 완전한 해결이어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김여정이 내건 정상회담과 종전선언 논의의 조건을 보면 북한이 이런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다. “이중기준과 적대시 정책을 없애라”는 의도는 한·미 연합훈련, 미국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 첨단무기 개발 등의 중단이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핵·미사일에 대해선 ‘자위권’이라고 강변했는데 이런 억지가 어디 있나.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시켜 놓고 재건 문제를 논의하자는 것도 어이없다.
그런데도 정부와 여당은 ‘편의적 낙관’에 빠져 북한 감싸기에 바쁘다. 문 대통령은 미국 ABC방송 인터뷰서 “북·미 대화가 시작되기만 하면 한반도 문제가 풀릴 단서가 열릴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지난 세 차례 미·북 정상회담에서 성과가 없었던 것은 북한이 핵을 버릴 뜻이 없기 때문인데, 근거없는 낙관이 아닐 수 없다. 북한이 핵시설을 다시 돌리는데도, 여당 대표와 외교부 장관은 북한의 장거리 탄도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중단에 대한 상응조치로 제재 완화를 주장했다. 통일부는 100억원 규모의 지원에 나섰다.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핵시설 재가동에 대해 ‘전력 질주’라고 한 경고를 무색하게 한다.
김여정이 담화에서 “남조선 정치권의 움직임을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고 한 말은 제재 완화 목소리를 더 키우라는 ‘지시’로 들린다. 이미 김여정의 “한·미 훈련을 없애라”는 한마디에 범여권 의원 70명은 훈련 연기 연판장을 돌리며 맞장구친 바 있고, 대북전단 중단 요구에 대북전단금지법도 만들어졌다. 김여정 담화에 대해 여당은 “남북대화의 재개를 알리는 파란불”이라며 환영했다. 이러니 김여정이 한국을 종속변수쯤으로 여기고 칼자루를 잡고 맘껏 휘두르는 것 아닌가. 이 정권은 내년 2월 중국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남북한 정상회담을 여는 데만 온통 신경을 쓰며 자존심도 팽개친 듯하다. 북한 권력자의 여동생이 남북한 관계를 쥐락펴락하는 이 현실이 갑갑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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