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문은 반도체 기업들이 극비에 부치고 있는 영업비밀을 집중적으로 요구했다. 구체적으로 각 기업의 3대 고객 리스트와 예상 매출, 제품별 매출 비중, 리드타임까지 답하도록 하고 있다. 제품의 생산 능력과 주문량이 이를 넘어설 경우 대비책도 제출하도록 했다. 반도체 구매·사용 기업으로서도 민감한 질문인 것은 마찬가지다. 완성차 업체는 반도체 쇼티지(공급 부족)로 인한 생산 차질 가능성을 자세하게 기술하도록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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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회사로선 생산 능력이 어디까지인지를 극비에 부치고 있다. 반도체 생산량을 가늠할 수 있는 수율이 대표적이다. 수율은 웨이퍼 한 장에 설계된 최대 칩(IC)의 개수 대비 생산된 정상 칩의 개수를 백분율로 나타낸 수치다. 업계 관계자는 “수율을 밝히는 순간 해당 기업의 기술력이 그대로 밝혀져 가격 협상에서 불리한 입장에 설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반도체 기업의 재고와 생산능력 등이 밝혀지면 반도체 가격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반도체 고정거래가격은 PC 업체 등 주요 고정거래처와의 협상을 통해 장기 계약 형태로 결정하는 공급 가격이다. 만일 반도체 기업이 처리해야 할 재고량이 많다고 알려지면 고정거래가격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실제 인텔과 미국 정부는 노골적으로 협력 관계를 공고히 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인텔이 반도체 투자 보조금 유치를 위해 로비에 나섰다는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업계에선 이 같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한국을 포함해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이 미 정부의 압박을 피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미 정부는 국방물자생산법(DPA)을 동원해 정보 제출을 강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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