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테이퍼링(자산매입 축소)이 예고된 가운데 4300조원까지 불어난 가계 기업 등 국내 민간부채가 경제위기의 뇌관이 되지 않게 관리해야 하는 금융당국으로선 고민이 적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차입 규모를 줄여야 글로벌 긴축국면에 대응할 수 있다. 고승범 금융위원장이 어제 “가계부채 총량관리를 내년 이후까지 확장하고, 효과가 나타날 때까지 강도 높은 조치를 시행하겠다”고 강조한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경제활동이 일어나는 곳에 ‘혈액’처럼 돈을 공급해야 하는 금융의 기본 역할을 도외시하는 정책이라면 받아들이기 곤란하다. ‘빚 폭탄’이 우려된다고 돈줄을 무조건 조이는 게 능사일 수 없다. 더군다나 저(低)신용자는 연체를 해도 이자를 오히려 깎아주고, 고(高)신용자들만 대출 총량규제의 희생양으로 삼는 금융정책이 제 궤도를 지키고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과도한 저신용자 배려가 도덕적 해이로 이어져 부실채권 발생 위험을 높인다면 그 책임은 누가 질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또 대출규모가 큰 고신용자를 옥죄면 집값 불안도 동시에 잡을 수 있다는 규제편의적 발상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지금의 가계부채 관리는 지극히 거칠고 투박하게 일방적으로 추진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무리한 규제가 부작용을 양산하면 더 큰 규제를 꺼내야 하는 자충수에 빠지게 될 것이다. 스물여섯 차례 부동산 대책 실패의 교훈을 떠올려야 한다. 그런 점에서 부채 증가 억제와 ‘돈맥경화’ 예방 사이에서 적절히 균형을 잡고 실수요자 피해는 막는 정책이 중요하다. 정부 실력은 이런 데서 드러난다는 점을 국민은 이미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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