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앨라배마주에서 고철상으로 부를 쌓은 지미 필러는 최근 또 다른 유명세를 누렸다. 80세에 가까운 그가 금융정보사이트 팁랭크의 기업내부자 거래 순위 명단에서 1위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팁랭크에 따르면 29일(현지시간) 필러는 2014년 이후 총 496건의 내부자 거래 가운데 372건(75%)에서 3개월만에 막대한 수익을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그가 이사회 임원으로 있는 서비스퍼스트 뱅크쉐어스(뉴욕증권거래소)나, 최대주주로 있는 센추리 뱅코프(나스닥)의 주식 거래를 통해서다.
이에 대해 블룸버그통신은 "최근 밈(Meme) 주식 거래량이 폭발하고 암호화폐가 대체 투자처로 인기를 끈 정서의 배경에는 내부자거래를 통한 주가 조작 의혹에 대한 대중의 믿음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내부자거래 전문가인 와튼스쿨의 다니엘 테일러 교수는 최근 이와 관련된 보고서를 냈다. 그는 "현재의 시스템 하에서 벌어지는 기회주의 남용 사례가 엄청나다는 것에 대한 인식이 여전히 부족하다"며 "오늘날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주식 시장이 조작됐다고 믿고 있고, 그들이 옳다"고 지적했다.
테일러 교수는 SEC으로부터 2000년~2017년까지 기업 조사 목록을 받아 폼4 자료와 비교 분석했다. 그 결과 각종 법적 문제가 주가에 반영되기 전에 주식을 팔아 꾸준히 손실을 피한 기업 임원진들이 다수 발견됐다. 2019년 11월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언더아머의 회계부정 조사 의혹을 보도하기 전 이미 기업 임원들이 주가를 팔아치운 게 대표적이다.
보잉사의 한 임원도 2018년 라이온에어610편 추락의 원인이 소프트웨어 문제일 수 있다는 보고를 받은 직후 500만달러어치 주식을 팔았다. 추락 원인에 관한 내용은 5개월가량이 지나서야 대중에 공개됐다.
이는 미국의 내부자거래 공개규정이 모호한 탓이란 게 업계의 공통된 지적이다. 영국이나 유럽연합(EU)과는 달리 미국 기업들은 '어떤 정보가 중요한지'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 많은 재량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즉 중요 여부에 대해 자체적으로 결정해 공개하지 않는 일이 빈번하다는 설명이다.
SEC은 기업 내부자가 내부정보를 이용해 주식 거래에 나서는 행위를 제한하기 위해 10b5-1라는 장치를 마련해두고 있다. 임원진 등이 사전에 제출한 계획대로 주식을 거래하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많은 한계가 있다. 이미 비공개 정보를 받은 상태에서 곧바로 거래 계획을 제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실제 제약사 모더나가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임상시험 준비를 발표하기 3일전 당시 최고의료책임자였던 탈 잭스는 "10주동안 1만주를 팔 계획"이라는 10b5-1를 제출해 실행에 옮겼다. 당시 거래로 잭스는 340만달러의 수익을 얻었다. 이밖에 10b5-1 계획은 제출자가 원할 때마다 언제든 수정 가능하다는 단점 등이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미국에서는 내부자거래가 범죄라는 인식 자체가 늦게 받아들여졌다. 다른 금융범죄에 비해 큰 피해를 양산하지 않는다는 인식도 여전히 남아있다. 예를 들어 노인 투자자들을 속이는 폰지 사기나 분식회계 등과 비교했을 때 임원들의 내부자거래는 피해 규모가 크지 않다는 주장이다. 이들은 "개미투자자들이 주가가 반등하기 직전에 해당 기업 임원에게 주식을 팔았다면 기껏해야 주당 몇 달러를 놓쳤을 뿐"이라고 지적한다.
내부자거래가 시장자유주의의 일면이란 주장도 나온다. 존 앤더슨 미시시피주립대 법대 교수는 "시장이 공평한 경쟁의 장이 돼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정말 쉽지만, 현실은 그런 적이 없다"며 "사람들이 시장에 나오는 이유는 그들이 상대방보다 더 나은 정보와 이해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무엇보다 현실적으로 범죄로서의 입증이 어렵다는 문제점이 있다. 검사가 피의자가 내부자 정보를 입수한 뒤 부정행위를 의도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는 고의성까지 입증해야 하는데, 이게 내부자거래를 기소하기 가장 어려운 화이트칼라 범죄 중 하나로 만들었다. 전 SEC 집행부 출신 러스 라이언은 "내부자거래는 스모킹건 없이는 입증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SEC이 내부자거래 데이터를 분석한 데이터 주도 접근 방식을 모색하고 있지만, 아직 법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내부자거래를 단죄하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유명 헤지펀드 매니저들을 포함한 내부 거래자들을 법정에 세우면서 월가에서 엄청난 평판을 쌓았던 프리트 바바라 전 미 연방검사가 대표적이다. 그는 당시 기소 건이 2014년 항소법원에서 무죄가 선고되면서 검찰을 떠나야 했지만, 이후 학계와 변호사들로 구성된 내부자거래 태스크포스(TF)를 만들었다. 해당 TF는 내부자거래와 사기죄의 연결성을 끊고 내부자거래를 단독범죄로 처벌할 수 있게 만드는 등 여러 제안을 내놓았다. 민주당 소속 짐 하임스 의원은 바바라 측의 제안을 일부 받아들여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올해 5월 하원에서 통과됐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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