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세계 자동차업계의 생산 차질을 불러온 반도체 칩 품귀 현상이 내년에도 계속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동안 시장에는 올해 말이면 반도체 부족 문제가 상당 부분 해결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하지만 공급망 차질이 예상보다 심각하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수년이 걸려도 극복하기 힘든 구조적 대격변일 수 있다”는 관측에 무게가 실리는 분위기다.
WSJ는 또 조립·검사업체는 마진이 적은 사업구조여서 생산설비를 쉽게 확대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생산설비를 늘리더라도 실제 생산량이 증가하려면 최소 9개월이 걸릴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자동차 제조에 주로 쓰이는 반도체가 저사양·저마진의 마이크로컨트롤러라는 점도 자동차용 반도체 품귀 문제를 키우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반도체업체들이 수익성이 좋지 않아 생산을 꺼리기 때문이다. 시장조사업체 IHS마킷에 따르면 세계 반도체 제조업체들이 그동안 발표한 4000억달러 규모의 생산 확대 계획 가운데 마이크로컨트롤러와 관련된 내용은 거의 없다.
IHS마킷은 이런 상황을 고려해 내년 세계 차량 생산량 전망치를 기존 전망보다 850만 대 줄인 약 8260만 대로 조정했다. 컨설팅회사 알릭스파트너스는 반도체 부족에 따른 올해 세계 자동차업계 매출 손실액을 기존 추정치(1010억달러)의 두 배 이상인 2100억달러로 전망했다.
피아트크라이슬러와 푸조시트로엥의 합병회사인 스텔란티스는 이달 이탈리아 멜피 공장을 6일간만 가동하기로 했다. 멜피 공장은 스텔란티스가 이탈리아에서 운영하는 가장 큰 생산시설이다.
일부 자동차 관련 업체는 이미 내년 생산 계획 재검토에 들어갔다.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자동차 부품업체를 운영하는 한 기업인은 WSJ와의 인터뷰에서 “내년 생산 규모를 당초 계획 대비 20% 줄이기로 했다”며 “고객사인 완성차업체의 반도체 수급 현상이 너무 불안정해 이마저도 확정된 사안은 아니다”고 전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TSMC는 반도체 칩 가격을 최대 20% 인상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는 “내연기관 차량에서 자율주행차 및 전기자동차로의 전환이 이뤄질수록 반도체 수요는 더 늘어날 것”이라며 “차량 한 대를 제조하는 데 들어가는 반도체 비용이 2019년에는 전체의 4%였다면 2030년에는 20% 수준이 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박상용 기자 yourpencil@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