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약해진 공급망에다 탄소중립 등 친환경 정책이 겹치면서 ‘가스플레이션(가스 가격 상승에 따른 인플레)’ 공포가 덮쳤다. 천연가스 가격은 7년 만에, 서부텍사스원유(WTI)는 3년 만에 최고치다. 중국이 석탄 부족으로 공장 가동 중단이 속출하자 사생결단으로 가스 확보에 나서 지난 주말 천연가스 선물가격은 하루 새 7%나 치솟았다. 물류대란으로 세계 식료품 가격도 코로나 이전(작년 3월)보다 40% 급등했다. 미국 중앙은행(Fed)이 통화 정책에 참고하는 8월 개인소비지출(PCE)지수는 30년 만에 최고 상승률(3.6%)을 기록했다. 유로존 19개국 9월 물가상승률도 3.4%로 2008년 이후 최고다.
무엇보다 공급망 쇼크의 영향을 제조업이 가장 크게 받는 점이 걱정을 더한다. 중국의 대표적 제조기지 광둥성은 이달부터 산업용 전기요금을 최대 25% 올렸다. 조만간 다른 성·시(省·市)로 확산되면 생산비용이 싼 중국에 의존했던 글로벌 상품시장에 후폭풍이 불가피하다. 독일 자동차업체 오펠은 반도체 품귀로 연말까지 공장을 폐쇄했고, 폭스바겐도 근무시간을 줄였다. 국내 업계도 마찬가지다. 현대자동차는 반도체 수급난에 따른 생산차질이 12만 대에 달한다. 생존경쟁이 한층 가열될 것으로 보고 LG그룹은 긴급 사장단회의까지 열었다.
제롬 파월 Fed 의장은 “시간이 지나면 위기가 완화되겠지만 언제쯤일지 말하기는 불가능하다”고 토로했다. 세계 경제는 이미 심각한 둔화 양상이다. Fed는 미국 성장률 전망치를 석 달 만에 1.1%포인트나 낮춘 5.9%로 발표했다. 중국의 9월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도 19개월 만에 최저치다. 최대 교역국인 중국과 미국의 동시 경제 위축은 제조업과 수출의존도가 높은 한국에 직격탄이다. 9월 수출이 역대 최대지만 수입이 더 늘어 무역흑자가 작년의 절반에 그친 것도 그런 사정에서다.
그런데도 정부는 말로만 위기를 외칠 뿐 대응은 땜질식이다. 지난 주말 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도 가계부채 강제 중단 같은 과격한 대증 요법 외에 구조적·선제적 조치는 실종이다. 국고를 헐어 재난지원금을 풀고 자화자찬하면서 시간을 흘려보내기에는 사정이 너무 긴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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