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클래스’ 베테랑과 국내파 루키의 대결. 마지막에 웃은 선수는 패기를 앞세운 송가은(21)이었다. 3일 경기 포천 아도니스CC(파71·6480야드)에서 열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하나금융그룹 챔피언십 4라운드에서 송가은이 연장에 연장을 거듭한 승부 끝에 이민지(25·호주)를 꺾고 우승컵을 안았다. 생애 첫 우승이자 올 시즌 KLPGA투어에서 루키가 차지한 첫 승이다. ‘골프는 장갑 벗을 때까지 모른다’는 골프계의 격언을 온몸으로 증명해낸 셈이다.
이민지는 세계랭킹 7위의 베테랑이다. 지난 7월 아문디 에비앙 챔피언십에서 따낸 첫 메이저 우승을 비롯해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통산 6승을 기록한 강자다. 하지만 아직 고국인 한국 대회에서는 우승하지 못했다. 송가은은 지난해 정규투어에 입성한 ‘중고 신인’이다. 코로나19로 7개 대회만 출전해 올해까지 루키 자격을 유지하고 있다. 현재 홍정민과 신인상 포인트 1, 2위를 다투고 있다.
이민지는 이번 대회에서 노련한 경기 운영과 정확한 퍼트로 ‘월드클래스’ 경기력을 선보였다. 3라운드 18번홀에서 24m 버디 퍼트를 성공시킨 데 이어 4라운드에서도 롱 버디 퍼트를 잇따라 홀에 넣으며 선두를 지켰다.
하지만 후반 들어 조금씩 체력이 떨어진 듯한 모습이 보였다. 경기 중반까지 무서우리만치 정확하던 퍼트가 조금씩 힘을 잃으면서 타수를 더 줄이지 못했다. 특히 15번홀(파4)에서의 퍼트 실수가 뼈아팠다. 5m 거리의 파 퍼트가 홀 입구에 멈춰서면서 보기를 기록했고 1타 차 추격을 허용했다.
1타 차 2위로 최종 라운드에 나선 송가은은 공격적인 플레이로 추격을 이어갔다. 5번홀(파3) 버디에 이어 7번홀(파3)에서도 1타를 더 줄여 공동선두에 합류했다. 10번, 11번홀(모두 파4)에서 이민지가 버디를 추가하며 달아났지만 13번홀(파4)에서 버디를 잡아 이민지를 위협했다.
18번홀(파5)에서는 희비가 엇갈렸다. 이민지의 버디 퍼트가 홀 한 뼘 앞에 멈춰선 반면 송가은은 세 번째 샷을 홀 2m 거리에 붙여 여유 있게 버디에 성공했다. 승부는 원점으로 돌아갔다.
18번홀에서 열린 연장 1, 2차전에서는 두 선수 모두 파 세이브를 이어가며 승부를 결정짓지 못했다. 연장 3차전은 같은 홀에서 핀 위치를 옮겨 진행됐다. 막상막하의 승부. 선공에 나선 송가은이 세 번째 샷을 핀 1m 거리에 붙이며 완벽한 버디 기회를 만들어냈다. 내리막 경사를 앞두고 있던 이민지의 네 번째 샷이 홀을 비켜갔다. 송가은은 침착하게 버디 퍼트를 홀에 떨어뜨려 긴 승부에 극적인 마침표를 찍었다.
송가은은 이번 우승으로 상금 2억7000만원을 받았다. 지금까지의 누적 상금액(2억604만원)을 뛰어넘는 액수다. 홍정민과 박빙을 벌이던 신인왕 경쟁에서도 1751점으로 1위 굳히기에 돌입했다.
이날 경기 내내 침착함을 잃지 않았던 송가은은 “(사실) 어젯밤에 엄청 떨었다. 아침까지 손에 땀이 날 정도로 긴장했다. 대회를 앞두고 ‘후회 없이 플레이하자’고 다짐했다”고 털어놨다. 이어 “연장이라고 생각하면 긴장할 것 같아 (이)민지 언니와 한 홀 더 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루키 시즌에 첫 승을 이뤄 기쁘다. 남은 시즌도 더 열심히 해서 신인왕을 따내고 싶다”며 생애 첫 승의 기쁨을 만끽했다.
이날 하루에만 6타를 줄이며 맹추격한 김지영(25)과 시즌 2승을 노린 김수지는 14언더파로 공동 3위에 올랐다. 세계랭킹 전 1위이자 올림픽 2회 연속 메달리스트 리디아 고(24·뉴질랜드)는 13언더파를 기록해 유해란(22), 장수연(27)과 공동 5위로 대회를 마쳤다.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