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2월 최윤석 현대코퍼레이션 상무는 주변의 만류에도 계약을 따내기 위해 투르크메니스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현지 도착과 함께 고난이 시작됐다. 도착 즉시 병원에 격리됐다. 소독제는커녕 비누조차 없는 열악한 환경이었다. 무감염이 입증돼 병원에서 나왔지만 현지 정부와의 접촉은 고사하고 지정된 숙소를 벗어나는 것조차 어려웠다. 최 상무는 악조건을 이기며 2주간 현지에서 협상을 벌였고, 계약서에 교통청장의 서명을 받아냈다. 그는 “20여 년 상사맨으로 일하면서 가장 극적으로 따낸 계약”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 장기화에도 세계를 향한 한국 기업인의 도전은 계속되고 있다. 이들의 성취는 개별 기업의 성과를 넘어 국격을 높이고 있다. 한국을 글로벌 강국 반열에 올린 신(新)기업가정신이 코로나 대격변의 시기에 다시 주목받고 있다. 한국경제신문과 한국경제TV가 함께 취재한 기업인들의 사투는 드라마 그 자체였다. 코로나19로 국제선이 90% 이상 줄어든 탓에 꼬박 이틀 비행기를 갈아타며 남미와 아프리카로 날아간 경우는 부지기수였다. 한 가닥 수주 희망을 걸고 5t 트럭 한 대 분량의 서류를 준비해 사업 파트너를 감동시킨 사례도 있다. 해외 사업장의 셧다운을 막기 위해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매일 수천 명씩 쏟아지는 인도와 중남미로 날아간 엔지니어들은 “할 일을 했을 뿐”이라며 담담하게 말했다.
수출입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기업들이 해외에 설립한 신규 법인과 지사는 2411개에 달했다. 1980년 해외 직접투자를 집계하기 시작한 이후 올 2분기까지 설립된 해외법인은 8만4212개, 누적 투자금은 6071억달러(약 721조원)에 이른다. 해외 주재원은 약 60만 명으로 추산된다.
경제계 관계자는 “해외 시장을 끊임없이 개척하는 일은 한국 기업인에겐 숙명과도 같다”며 “불가능에 도전하는 기업가 정신이 국가의 미래를 결정짓는 원동력”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국 기업들은 이제 ‘패스트 팔로어’가 아니라 시장을 주도하는 ‘키 플레이어’로 대접받고 있다. 한경미디어그룹이 창간 57주년을 맞아 해외에서 악전고투하는 한국 기업인의 도전정신을 기획 시리즈로 집중 조명하는 이유다.
강경민/남정민 기자 kkm1026@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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