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우리는 주로 현 단계에 가시화된 데이터를 가지고 환경문제에 관해 이야기한다. 지난 몇 년간 폐플라스틱 용기 발생량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머지않아 ‘쓰레기 팬데믹’ 시대를 맞이할지도 모른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해 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고 했던가. 오늘날만큼 지구인들의 쓰레기에 대한 관심이 이토록 뜨거운 적도 없었다.
최근 ‘제로 웨이스트’ 소비문화가 확산하고 있는 것은 플라스틱을 구매하지 않을 권리를 소비자에게 제공해 자발적 플라스틱 소비 감축을 유도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제로 웨이스트의 일환으로 포장 없이 세제나 화장품 등 내용물만을 소분 리필하는 ‘리필 스테이션(리필숍)’이 세계적으로 확산하고 있는 것도 좋은 현상이다.
우리나라에는 현재 100개가 넘는 제로 웨이스트 숍이 있는데 화장품 리필 판매가 가능한 곳은 최근까지도 10곳 남짓에 불과했다. 현행법상 화장품 소분 판매 때는 ‘맞춤형 화장품 조제관리사’가 상주해야 한다는 환경부 규제 때문이었다. 다행히 최근 환경부는 규제 실증특례를 통해 자격증이 없어도 위생 교육을 받은 직원들이 샴푸, 린스, 액체비누, 보디클렌저 등 4종의 화장품을 리필 판매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했다.
샌드박스를 통해 일시적으로나마 규제가 완화된 것은 다행스러우나 환경 선진국에 비하면 우리나라의 리필 스테이션은 걸음마 단계다. 미국, 독일, 프랑스, 영국 등 해외 주요국에서는 화장품, 세제뿐 아니라 곡물 건면 초콜릿 등의 식품류와 비누 치약 등 다양한 품목이 소분 가능하다. 특히 무인으로도 운영 가능해 플라스틱 감축과 더불어 제품 원가 인하로 소비자 후생 증진 효과까지 톡톡히 얻고 있다.
우리나라도 2년간의 시범 운영을 통해 위생과 안전성을 강화하면 추후에는 취지에 맞게 리필문화를 확산할 수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 리필 스테이션 사례가 주는 교훈은 소비자들이 일상에서 환경을 위해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정책이 다양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 첫걸음은 우리 모두가 플라스틱 소비에 대한 책임을 느끼고 사회적 효용에 대해 고민하는 일이다.
기후 위기에 따른 지구 종말이 머지않았다며 불안을 조장하는 방식만으로 과연 지구를 구할 수 있을까. 과학적 사실과 숫자에 근거해 종말 시기를 예측하고 환경 파괴의 주범을 찾아 비난하는 방식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우리가 환경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함께 이야기해나가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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