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킹=범죄' 규정 했지만 주변인 피해 방지책은 빠졌다

입력 2021-10-06 17:55   수정 2021-10-06 23:55

서울 은평구의 50대 여성 A씨를 지난 4일 살해하고 극단적 선택을 했던 30대 남성 B씨는 A씨의 딸인 인터넷방송 진행자(BJ)를 스토킹해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7월 ‘제주도 동거녀 아들 살인’, 올 3월 ‘노원구 세 모녀 살인’ 등에 이어 스토킹이 또다시 최악의 범죄로 이어진 것이다.

이 같은 범죄를 막기 위해 이달 21일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스토킹처벌법)이 시행된다. 그동안 개인 간 문제로 취급됐던 스토킹을 범죄 행위로 규정해 스토킹 가해자를 3년 이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는 게 핵심 내용이다.

전문가들은 “처벌법이 스토킹을 범죄로 규정한 점에서 진일보한 것은 분명하지만, 시행 이후에도 이번 은평구 사건과 같은 범죄를 막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가해자의 스토킹 범죄에 대한 처벌 조항은 있지만, 피해자와 가족 등을 보호하는 방안은 미흡하기 때문이다. 실질적인 범죄 예방까지 갈 길이 멀다는 얘기다.

스토킹처벌법에 따르면 추가 범죄를 막아야 할 필요가 있을 때 가해자가 피해자의 반경 100m 이내에 접근할 수 없도록 1개월간 긴급응급조치를 취할 수 있다. 위반할 경우 1000만원 이하 과태료가 부과된다.

이에 대해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100m는 10초대에도 달려갈 수 있는 거리로 사실상 의미가 없다”며 “비이성적 감정이 개입한 스토킹 범죄의 특성상 가해자는 과태료를 내더라도 피해자에게 접근을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이어 “절대적인 격리를 시행하고, 피해자가 원한다면 주거지 변경을 지원해 줘야 한다”고 제안했다. 영국은 스토킹 혐의가 입증되기 전 청구하는 ‘임시 보호명령’을 기간 제한 없이 계속 연장할 수 있다. 가해자가 이를 어길 경우 최대 5년 징역형을 받는다.

피해자 주변인에 대한 보호책이 전무한 점도 한계로 꼽힌다. 은평구 사건에서는 스토킹 피해자의 어머니가, 제주도 사건에서는 아들이 살해당했다. 한국여성의전화 관계자는 “가해자가 피해자를 위협하기 위해 피해자 자녀의 학교 앞에서 기다리거나, 부모를 찾아가는 등 주변인도 스토킹하는 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한다”며 “이번 법안에서 피해자 주변인을 보호할 수 있는 실질적 조치가 빠졌다”고 했다.

정부는 이번에 시행되는 스토킹처벌법과 별개로 스토킹 피해자 보호법도 추진 중이다. 처벌법은 법무부가, 보호법은 여성가족부가 담당한다. 하지만 처벌법 시행이 임박했는데도 보호법은 윤곽조차 잡히지 않은 실정이다. 여가부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초안을 만들었지만 관계부처 의견 수렴을 통해 정부안을 확정하고, 이후 국회의 법개정 절차를 거쳐야 한다”며 “시행 시기는 예단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최예린 기자 rambut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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