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의 과정과 결론의 파격성에서 ‘조세 국제화’와 ‘과세원칙의 변화’라는 급물살이 뚜렷이 감지된다. 다국적 기업은 이제 초과이익의 25%에 대한 세금을 매출이 발생한 나라에 내야 한다. 매장 등 거점을 전제로 해온 과세 기본원칙은 중대한 도전에 직면했다. ‘연결매출 200억유로(약 27조원), 이익률 10% 이상’이라는 기준을 충족하면 디지털세를 내야 해, 한국 기업 중에선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과세 대상이다. 작년 실적 기준으로 삼성전자의 디지털세는 6000억원 선으로 추정된다.
디지털세는 구글 등 글로벌 정보기술(IT) 회사들이 저(低)세율국으로 서버를 옮겨 세금을 회피하는 것을 막기 위해 제안됐다. 그런데 뚜껑을 열고 보니 구글세가 아니라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세금이 되고 만 다소 황당한 결말이다. 우리 정부는 기왕에 내던 법인세 일부를 외국에 내는 것일 뿐이라지만, 현지 납세협력 비용 증가 등의 부작용이 불가피하다. 2030년부터 매출 기준이 100억유로로 낮아지는 등 어떤 변화가 닥칠지 몰라 결코 여유를 부릴 때가 아니다.
‘최저세율 15%’ 합의도 30년 이상 지속된 법인세율 인하 경쟁에 마침표를 찍은 사건이다. 주권국 상징인 조세권 문제여서 합의가 쉽지 않을 것이란 회의론을 뚫고 사상 최초로 합의에 이른 것은 글로벌 조세개혁 바람을 예고한다. 그런데도 우리 세제당국 대응은 오락가락 영 미덥지 못하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구글코리아 등에서 유입되는 세수가 더 많을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세수 확보에 도움이 되도록 국제 협상에서 ‘배분 비율 상향’을 왜 요구하지 않았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글로벌 조세개혁의 신호탄이 오른 만큼 국내 세제를 국제 기준에 맞추는 일이 더욱 중요해졌다. 낮은 법인세를 노리고 아일랜드 헝가리 등지로 진출한 유수의 글로벌 기업이 새 둥지를 찾아 나설 가능성도 제기된다. 상대적으로 높은 법인세와 한국만의 갈라파고스 규제를 국제 수준으로 정비한다면 국내 기업의 유턴이 늘고 다국적 기업의 한국행을 기대할 수 있다. 정부가 개편을 공언한 세계 최고 수준의 상속세와 OECD 평균보다 높아진 부동산 보유세 등 세제 전반의 과감한 개혁도 시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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