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 ‘초격차 전략’의 핵심은 과감한 선행투자다. 경쟁업체들보다 한발 먼저, 조금 더 많이 투자해야 미래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것이 삼성 경영진의 믿음이다. 삼성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가석방된 직후인 지난 8월 24일 새로운 중장기 투자계획을 내놨다. 2023년까지 반도체와 바이오 분야 등에 240조원을 신규 투자하겠다는 것이 골자였다. 당시 경제계에선 삼성의 발표에 대해 코로나19로 산업 지도가 재편되고 있는 격변기가 끝나기 전에 전열을 정비하고, 이 부회장과 삼성에 걸린 사회적 기대에도 부응하겠다는 의미라는 분석이 나왔다.
글로벌 1위인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선 14나노미터(㎚, 1㎚=10억분의 1m) 이하 D램과 200단 이상 낸드플래시 등 ‘초격차’를 유지할 수 있는 기술 투자를 단행할 예정이다. 파운드리 등 시스템 반도체 사업 육성전략의 키워드 역시 ‘기술’이다. GAA(게이트올어라운드) 등 3나노 이하 제품을 제조할 수 있는 신기술을 조기에 상용화해 대만 TSMC와의 격차를 좁히기로 했다.
삼성전자는 지난 5월 ‘K-반도체 벨트 전략 보고대회’에서 2030년까지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 171조원을 투자해 파운드리 공정 연구개발·시설투자를 가속화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번 발표로 삼성전자의 투자 규모가 더 늘어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미국 제2 파운드리 공장을 비롯해 시스템 반도체 부문에만 향후 3년간 최소 50조원 이상이 투입될 것으로 업계는 예상하고 있다.
삼성 측은 중장기 계획을 내놓으며 한국의 반도체산업이 ‘비상 상황’에 처해 있으며 반도체는 한번 경쟁력을 잃으면 재기가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번 투자는 미국, 중국, 유럽연합(EU) 등이 벌이고 있는 반도체 패권 전쟁 속에서 활로를 찾기 위한 ‘생존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제2의 반도체’로 낙점한 바이오 사업에도 집중적으로 투자할 예정이다. 인천 송도에 단일 공장 기준 세계 최대 규모인 4공장(25만6000L)을 짓고 있는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바이오 사업의 주역이다.
이 회사는 1~4공장 인근에 조성 중인 송도 11공구 첨단산업클러스터 내에 부지를 확보하기 위한 물밑 작업을 벌이고 있다. 4공장이 2023년 완전 가동에 들어가면 회사 전체 생산능력은 62만L가 된다. 27만5000L인 생산능력을 2025년까지 48만L로 증설하는 2위 업체인 독일 베링거인겔하임을 압도하게 된다. 여기에 5·6공장을 추가로 건설해 ‘바이오 초격차’를 완성한다는 계획이다.
첨단 인력, 차세대 기업가, 사회활동가 등 다양한 분야의 미래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방안도 내놨다. 청년들의 소프트웨어 전문성을 키우고, 스타트업과 비정부기구(NGO), 첨단인력을 육성한다는 게 골자다. 구체적으로 청년들에게 소프트웨어를 교육해주는 청년SW아카데미(SSAFY) 캠퍼스를 전국적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이 부회장은 김부겸 국무총리와 가진 간담회에서 연간 1000명 수준인 SSAFY 교육생을 내년부터 2000명 이상으로 증원하겠다고 설명했다. 현재 삼성은 서울, 대전, 광주광역시 등 전국 5개 SSAFY 캠퍼스를 운영 중이다.
■ 240조원
삼성은 올해부터 2023년까지 3년간 주요 전략 사업에 240조원을 투자한다고 지난 8월 밝혔다. 이 중 180조원은 국내에 투입할 예정이다. 코로나19로 미래 질서가 재편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 투자 규모를 예년보다 50% 정도 늘려잡았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