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실리는 SK 이사회, CEO 연봉 직접 결정

입력 2021-10-11 17:32   수정 2021-10-12 01:26

“거버넌스(지배구조) 스토리의 핵심은 지배구조 투명성을 시장에 증명해 장기적인 신뢰를 이끌어내는 것입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사진)은 지난 7일 서울 종로구 SK서린사옥에서 열린 ‘제3차 거버넌스 스토리 워크숍’에 참석해 이렇게 말했다. 이사회에 최고경영자(CEO)에 대한 인사와 중장기 전략 마련 등 핵심적인 경영 권한을 부여한다는 것이 골자였다. 수동적 역할에 그쳤던 이사회를 권한을 갖춘 핵심 기구로 탈바꿈시켜야 기업 가치를 끌어올릴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인사·전략까지 이사회에 권한 넘겨
11일 SK그룹에 따르면 지난 7일 워크숍에서 최 회장과 13개 주요 계열사 사내·외 이사들은 그룹 전체로 이사회 중심 경영을 확대해나가기로 합의했다. 지난 3월 그룹 지주사인 SK㈜ 이사회 산하에 ‘인사위원회’와 ‘ESG위원회’를 신설해 △대표이사 평가 및 후보 추천 △사내이사 보수 적절성 검토 △중장기 성장 전략 등 권한을 부여한 것을 그룹사 전체로 확대하기로 했다.

지금까지 주요 대기업 이사회는 총수와 경영진에 대한 감사나 내부 규정 정비 등 수동적인 역할만 담당했다. 핵심 경영진의 선임이나 보수 결정 안건에 찬반 의견을 냈지만 안건이 만들어지는 과정부터 참여하는 일은 드물었다. 이사회가 ‘거수기’ 역할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아온 이유다.


SK그룹은 이번 조치를 통해 이사회 권한을 전사에 걸쳐 대폭 강화했다. 인사위원회는 CEO 후보를 추리는 과정부터 의사결정에 참여한다. CEO에 대한 평가와 보상 과정에도 참여해 회사 경영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ESG위원회는 중장기 전략 및 대규모 투자사업, 연간 경영계획 등을 사전에 심의한다.

강력해진 권한만큼 이사회의 역량도 높일 계획이다. SK그룹은 △교육프로그램 등을 통한 사외이사 역량 강화 △전문성 등을 갖춘 사외이사 후보 발굴 △회사 경영정보 공유 및 경영진과의 소통 확대 등을 추진하기로 했다. 사외이사들에게 퇴임 이후에 팔 수 있는 회사 주식을 무상으로 주는 인센티브 방식인 ‘스톡그랜트’도 주요 계열사 중심으로 확대하고 있다.

최 회장은 “앞으로 사외이사들이 CEO와 함께 IR행사(기업설명회)에 참석해 시장과 소통하고 내부 구성원들과도 소통을 많이 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배구조에 대한 시장 신뢰 필요”
업계에선 SK그룹의 거버넌스 스토리를 그룹의 핵심 경영 전략인 ‘파이낸셜 스토리’의 ‘보완재’로 보고 있다. SK그룹은 작년부터 매출과 영업이익 등 재무성과뿐 아니라 시장이 매력적으로 느낄 수 있는 목표와 구체적 실행계획을 담은 성장 스토리를 의미하는 파이낸셜 스토리를 화두로 활발한 사업 재편에 나서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 1일자로 배터리사업과 석유개발(E&P) 사업을 각각 물적분할해 ‘SK온’과 ‘SK어스온’을 출범시켰다. 작년엔 SK텔레콤의 모빌리티 사업을 분할해 티맵모빌리티를 설립하고, 인적분할을 통해 투자회사인 SK스퀘어를 세우며 사업 구조를 개편했다.

사업분할은 성장성이 높은 신사업 분할을 계기로 대규모 투자금을 유치한 뒤 독립 경영을 통해 그룹의 ‘파이’ 자체를 키우는 전략이다. 하지만 이 전략이 성공하기 위해선 최 회장 등 오너 일가의 지분 확대와는 관계없이 순수하게 주주가치를 높이기 위한 행보라는 시장의 신뢰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최 회장이 워크숍에서 ‘시장의 신뢰’를 강조한 이유다.

거버넌스 스토리 구축 작업에 참여한 이찬근 SK㈜ 사외이사는 “주주 및 투자자들을 만나보면 지주회사와 자회사 간 이해충돌 여부, CEO 평가 등에 관심이 많다”며 “충분한 소통과 정보 제공을 통해 시장의 신뢰를 쌓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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