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노동자 10만여 명이 파업을 경고하고 나섰다. 임금 인상과 근로 환경 개선을 요구하면서다. 파업 위기는 의료·제조·영화 등 전방위적으로 치닫고 있다. 코로나19 여파로 기업들이 인력 모집에 어려움을 겪자 근로자들의 발언권이 강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전역에서 노동자 10만 명 이상이 파업을 예고하고 있다고 미 정치전문매체 더힐이 1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들은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영향으로 실질 임금이 줄고 있다며 사측에 연봉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인력 공백으로 근로 강도가 높아졌다며 근로 시간 단축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미 파업에 돌입한 노동자들도 많다. 시리얼 제조사 켈로그의 근로자들이 대표적이다. 미시간·네브래스카·펜실베이니아·테네시주 공장에서 근무하는 켈로그 직원 1400명은 근로 시간 단축과 강제 초과 근무 중단을 촉구하며 지난 5일부터 파업을 이어가고 있다. 임금 상승도 요구 사항 중 하나다.
켈로그에서 20년간 근무한 캐빈 브래드쇼는 파이낸셜타임스(FT)에 코로나19에 따른 인력 감소로 "하루 16시간, 주7일을 근무하기도 한다"며 "회사에 쏟는 시간으로 인해 생일, 졸업식, 장례식 등 대부분의 사람들이 놓치지 않는 것을 챙기지 못하게 된다"고 말했다.
켈로그의 노사 협상은 현재까지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켈로그 직원들은 회사로부터 새로운 제안을 받지 못했다고 전했다. 켈로그는 "노조는 협상을 잘못 전달했다"며 "다른 자원으로 공장을 계속 가동하고 있다"고 밝혔다. 파업 시작 후 켈로그의 주가는 2.6% 하락했다.
할리우드도 파업의 기로에 섰다. 미국 영화·TV산업 종사자 6만여 명은 이날 협상이 결렬될 경우 다음 주부터 전국 단위 파업에 돌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촬영·무대·소품·메이크업·의상 등을 담당하는 근로자들의 노동조합인 '국제 극장 무대 종사자 연맹(IATSE)'은 넷플릭스 등 할리우드 주요 제작사를 대표하는 '영화·방송 제작자 연합(AMPTP)'을 상대로 임금 인상과 휴식 시간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합의가 불발되고 업무 중단이 현실화될 경우 128년 IATSE 역사상 첫 전국 단위 파업이 된다.
의료계에서도 대규모 파업 가능성이 흘러나온다. 이미 뉴욕에선 병원 근로자 2000명, 매사추세츠주 간호사 700명이 파업에 돌입했다. 이에 더해 의료기관 카이저퍼머넌트에서 근무하는 캘리포니아, 오리건주 간호사 2만4000명은 단체협약이 교착 상태에 빠지자 지난 11일 파업을 결의했다.
장기화되는 코로나19 사태로 극심한 피로감을 호소하는 이들은 인력 충원을 촉구하고 있다. 4%의 연봉 인상도 주장한다. 사측안인 1% 보다 높은 수준이다. 오리건 간호사 및 보건 전문가 연합의 조디 바르쇼 회장은 "목숨을 걸고 코로나19와 사투를 벌이는 일선 의료진들에 대한 결례"라고 비판했다.
노사가 인플레이션에 대한 서로 다른 해석을 내놓으면서 임금 인상 논의가 차질을 빚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높은 인플레이션을 감안해 임금을 높여야 한다는 노조원들의 주장이 사측과 충돌한다는 것이다. 코로나19 사태가 노조원들이 단합하는 계기가 됐다는 시선도 있다. FT는 "미국 노조는 여론의 지지를 잃으면서 가입자 수가 1979년 정점을 찍고 감소세를 보였다"면서 "그러나 코로나19 사태가 근로 환경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키면서 노조가 힘을 모으고 있다"고 전했다.
허세민 기자 se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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