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부터 그동안 사실상 막혔던 전세 대출이 재개되면서 시장에선 전세 수요자들이 느는 분위기다. 중개업소에선 언제 대출이 다시 중단될지 몰라 서둘러 전세를 얻으려는 세입자들의 문의가 증가했다.
금융당국이 지난 14일 전세대출을 가계부채 총량관리 한도에서 제외하기로 하면서, 은행들은 즉각 전세대출 제한 조치를 풀기 시작했다. KB국민은행은 지점별로 관리해오던 가계대출 취급 한도에서 전세대출을 제외하기로 했다. 신한은행은 5000억원으로 제한했던 대출 모집인 전세대출 한도를 풀기로 했다. 우리은행도 늘어난 대출 여력만큼 지점별로 관리하던 전세대출 한도를 추가 배정한다.
다만 국민은행과 하나은행은 전세대출 한도를 보증금 증액 범위 내로 제한하는 조치를 유지하기로 했다. 다른 시중은행들도 이달 말에 이런 조치들을 동반 시행할 예정이다. 예를 들어 전셋값이 4억원에서 6억원으로 2억원 올랐다면 세입자는 기존에는 전세보증금의 80%인 4억8000만원까지 대출받을 수 있었지만, 이 조치로 인해 증액분인 2억원까지만 추가 대출이 가능하다. 3억원 가까이 한도가 줄어든 셈이다.
수요자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정부의 정책 번복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를 함께 쏟아내는 중이다. 한 부동산 커뮤니티에는 "최근에 대출을 못 받아 계약금을 물어주고 계약이 파기됐다"며 "정부의 일관성 없는 규제로 입은 금전적 피해를 어떻게 보상할 거냐"는 글이 올라왔다. 다른 글에서도 "전세자금 등 대출규제로 부동산시장 안정이 가능한가", "실수요자들의 주거 안정까지 침해하는 정책"이라는 등의 성토가 줄을 이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그간의 매매가격 상승에 따른 가을 전세대란, 내년 가을엔 계약갱신청구권 만료되는 매물들로 인한 전세가격 폭등이 예상되는 시점"이라며 "전세자금대출이 차단된다면 실수요자(세입자)들에게는 반전세로 전환하거나 가진 돈에 맞춰서 타 지역으로 이사가는 선택지 밖에는 남지 않는다. 가계대출 총량관리라는 명목으로 집단대출과 전세자금대출까지 대상이 되면 문제가 크게 불거진다"고 지적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수도권 아파트 전셋값은 지난주(0.21%)보다 상승폭을 키워 이번주 0.24% 올랐다. 서울의 경우 전셋값 상승률이 2년 연속 매매가 상승률을 뛰어넘었다는 민간 통계도 나왔다. 부동산114의 시세 통계에 따르면 올해 1~9월 서울 아파트 전셋값 변동률은 9.97%로 매매가 변동률(9.74%)보다 높았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신고 기록을 살펴보면 동작구 상도동 힐스테이트상도센트럴 전용 84㎡ 아파트는 지난 8월까지 9억원대 초반에 전세 계약이 이루어졌지만 10월 들어선 10억원에 세입자를 들였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위치한 래미안대치팰리스 전용 94㎡도 지난 12일 16억5000만원에 전세 계약됐는데, 지난달 중순엔 같은 주택형이 15억원에 계약된 바 있다. 한달 새 1억5000만원 상승했다.
다만 정부가 이번 대출규제 철회를 '연말까지'로 한정해 무주택자들의 주거비 상승에 대한 불안감은 여전한 분위기다. 서울 사당동에 거주하는 직장인 한 모씨(45)는 내년 초 연말 전세 계약 기간이 만료되지만 이사를 앞당겨 하는 방안을 고민 중이다. 혹시나 새 전세를 얻어야하는 때 대출이 중단될까 불안해서다. 한씨는 "전세대출이 재개됐다는 발표가 나왔지만, 혹시 은행 한도가 다 차거나 다시 정부가 대출을 제한할지 모르는 일 아니겠느냐“며 ”그나마 대출이 나올 때 전세 계약을 해야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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