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은 통화정책과 물가 안정을 통한 국민경제 발전을 위해 설립된 대한민국의 중앙은행입니다. 정치적 중립을 통해 외부의 간섭없이 자율적으로 운영되는 한국은행은 통화·신용 정책의 연구 및 결정, 국내외 경제·금융 조사, 금융 시스템 건전성 관리, 지급결제시스템 관리, 경제통계 산출, 원화 발권, 외환보유액의 관리, 국제금융기구와 협력 등의 업무를 수행하죠. 저번 칼럼에서 한국은행의 역할에 대해 이해했다면 오늘은 한국은행의 설립 과정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905년 이전 대한제국(1897~1910) 시대에는 백동화와 엽전이 유통됐습니다. 1905년 종결된 러일전쟁 승리 후 대한제국에 화폐 발행권을 뺏어온 일본은 백동화와 엽전을 자국의 상업은행인 제일은행(第一銀行: 다이이치긴코)이 발행한 화폐로 대체하는 화폐정리사업을 실시했죠. 이때 일본 제일은행에 발행된 화폐가 조선 엔화입니다.
화폐정리사업을 통해 일제는 대한제국의 재정과 유통체계를 장악했습니다. 화폐정리사업이 마무리되던 1909년 10월 통감부가 설치한 대한제국의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은 제일은행의 발권 기능을 승계합니다. 일제에 국권을 빼앗기고 난 후인 1911년 3월 조선은행법에 따라 개칭된 조선은행은 일제 강점기 약 34년 동안 중앙은행의 역할을 수행하죠.
해방 후 미군정은 대한민국 원을 법정 통화로 정하고 조선 엔의 가치를 무효화시킵니다. 군정법령 21호에 의해 미 군정청 소유로 조선은행은 존속하게 되고 여전히 중앙은행의 역할을 수행하죠. 단, 일본인 소유의 모든 재산이 군정청으로 귀속되도록 해 조선은행은 군정청 직속 기관이 됩니다.
이후 1947년 6월 16일 외국과의 무역을 진흥시키고자 외국환 금융 제도를 수립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조선환금은행이 창립됩니다. 1948년 9월 20일 발효된 '대한민국정부와 미국정부 간의 재정 및 재산에 관한 최초협정'을 통해 조선은행을 포함한 군정청이 가지고 있던 모든 국유재산은 대한민국 정부에 이양되죠.
일련의 사태로 대한민국 정부 수립 전후 환금은행과 조선은행은 경제 정책에서 중추적 역할을 수행하게 됩니다. 구체적으로는 조선은행이 은행권을 발행하고 환금은행이 발행 담보를 보관하는 이원화된 구조를 유지하게 되죠. 그러나 이 시스템하에서는 통화 가치와 외환 거래가 연계되지 않아 환율·금융 정책을 수립할 힘이 부족했기에, 두 기관의 통합이 추진됩니다. 이를 환은통합이라 부릅니다.
이후 미국정, 남조선 과도정부를 거치면서 중앙은행 설립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됐습니다. 그러나 다양한 갈등으로 인해 지연되다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인 1950년 2월이 되어서야 한국은행법 초안이 완성되고 같은 해 6월12일 한국은행은 정식으로 업무를 개시합니다. 이처럼 나라를 되찾는 것만큼 중앙은행을 되찾는 과정도 쉽지 않았습니다.
<한경닷컴 The Moneyist> 홍기훈 CFA한국협회 금융지성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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