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총이나 칼에 맞아도 즉시 회복돼 불사신에 가깝습니다. 아프지 않고 다치지도 않고 더 나아가 죽지 않는 것은 인간이 가지고 싶은 가장 원초적인 욕구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이들이 크게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게 아닐까 합니다.
아쉽게도 인간이 영화와 같은 극적인 자기-치유 능력을 갖는 것은 현재 과학기술로는 어렵습니다. 자가치유 능력은 영화 속 능력만큼 극적이지는 않지만 생물이 무생물과 대비돼 갖는 주요 특징입니다. 자동차 접촉 사고를 내거나 휴대폰을 떨어뜨려 액정이 깨졌을 때 ‘생물처럼 이것들이 스스로 치유되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해봤을 겁니다. 이 기술은 앞서 언급한 우리의 소망보다 훨씬 우리 가까이에 왔습니다. 실제로 과학자들이 자가치유 물질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한국화학연구원(이하 화학연)에서는 이런 모순점을 극복하고 단단하면서도 자가치유 효율이 높은 소재를 개발했습니다. 개발한 자가치유 소재는 터미네이터의 T-1000처럼 자가치유 시에는 액체처럼 말랑해졌다가 다시 외부 충격에 대비해 스스로 단단하게 변하는 물질입니다. 화학연이 사용한 첫 번째 원리는 다이내믹 결합(dynamic bond)입니다.
최근 국내외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서 영감을 받아 자가치유 현상을 설명합시다. 자가치유 소재에 일어나는 분자 운동을 여러분이 운동장에서 하는 놀이로 상상해 봅시다. 일반적인 고분자 소재를 구성하는 공유 결합은 한 번 형성되면 쉽게 끊어지지 않습니다. 운동장 놀이에서 공유 결합 팀은 사람들이 잡고 있는 손을 놓지 않아야 합니다. 여기 술래(늑대)가 나타나면 손을 잡은 채 도망가야 하는데 움직임이 둔해져서 사람들 사이의 대형이 쉽게 무너집니다. 술래가 사라져도 원래 대형을 회복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죠. 화학연이 사용한 다이내믹 결합은 붙었다 떨어지는 것을 반복할 수 있습니다. 다이내믹 결합 팀은 손을 필요에 따라 놓았다가 다시 잡을 수 있는 권한이 있습니다. 이 팀은 술래가 나타나면 손을 놓고 다시 잡으면서 대형을 무너뜨리지 않고 손쉽게 도망다닐 수 있습니다. 술래가 사라지면 다시 본래 대형으로 쉽게 돌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화학연이 사용한 두 번째 원리는 ‘외부 충격 응답(stress-responsive)’입니다. 이 소재는 외부에서 오는 충격을 감지해 대비합니다. 강한 충격이 오면 스스로 크리스탈처럼 단단한 물질로 변하고, 외부의 충격이 사라지면 다이내믹 결합을 갖는 분자들이 자유롭게 움직입니다. 앞서 사용한 설명을 이어간다면, 외부 충격이 사라진 상태에서 다이내믹 결합 팀은 본래의 대형을 복구하기 위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상태가 됩니다.
또한, 자가치유 물질은 극한 환경에서 사용되는 제품의 사후 관리를 용이하게 합니다. 지하에 묻은 전선이나 해저 케이블의 경우 피복이 파손되더라도 수리가 매우 어렵죠. 자가치유 물질로 피복을 만들어 전선 및 케이블을 제작할 경우 손상을 스스로 회복하기 때문에 사후 관리가 쉬워집니다. 같은 원리로 주택에 매복된 전선과 케이블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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