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1년 계약직 근로자의 연차휴가는 26일이 아니라 11일이라고 판결한 이후 산업현장 곳곳에서 후폭풍이 현실화하고 있다. 정부 지침에 따라 26일치에 해당하는 연차수당을 지급한 소상공인들이 해당 근로자를 상대로 연차수당을 돌려받겠다고 나선 것이다. 일각에서는 대법원 판결 이후 정부가 행정해석 변경을 검토하겠다고 했지만 하루빨리 지침을 변경해 현장 혼란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연차수당 반환 소송에 가장 적극적인 곳은 청소·경비업체 등 단기 계약직이 많은 업종이다. 2019년 근로감독관의 압박에 못 이겨 청소 근로자 두 명에게 연차수당을 추가 지급했다는 한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A회장은 즉각 소송 의사를 밝혔다. A씨는 “지급한 연차수당 금액이 많지는 않지만 나를 임금체불 사업주라며 콩밥 먹이겠다고 협박했던 사람들”이라며 “변호사 비용이 얼마가 들더라도 반드시 받아낼 것”이라고 말했다. 한 노무법인 소속 노무사는 “대법 판결 관련 한국경제신문 기사를 보고 이미 지급한 수당 반환이 가능한지를 묻는 문의 전화만 여러 통 있었다”고 전했다.
정부 지침을 믿고 사업주로부터 연차수당을 타낸 근로자들도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1년 계약직이 끝나고 정규직 1년차로 채용됐는데 대표가 계약직 때 받은 연차수당을 반환하라고 한다”는 하소연이 대표적이다.
정부 지침에 따라 회사 취업규칙에 1년 계약직 연차휴가를 ‘26일’로 정해버린 기업도 있다. 근로자 과반수가 취업규칙 변경에 동의해주지 않으면 앞으로도 26일을 지급해야 한다. 이 기업 대표는 “대법원이 정부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는 기각해 면죄부를 줬다는 게 어처구니없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대법원 판결의 파장은 공공부문으로도 확대될 전망이다. 기세환 노무법인 태광 노무사는 “공공기관은 반환 소송에 나서지 않으면 감사원 감사 대상이 될 수 있다”며 “공공부문에서도 곧 소송이 확산될 것”이라고 말했다.
고용노동부는 “(대법원 판결에 따라) 지침 변경을 검토하겠다”고 밝혔지만 하루빨리 행정해석 변경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통상 1년 계약직 근로자는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를 계약 기간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연내 지침이 개정되지 않으면 내년 초 연차수당 지급을 놓고 사업주와 근로자 간 다툼이 폭증할 것으로 우려되는 대목이다.
이런 가운데 고용부가 행정해석을 내리는 과정에서 법률자문단 의견을 외면한 정황도 드러나 빈축을 사고 있다. 고용부가 2019년 자문 변호사나 교수로부터 받은 의견서에 따르면 “만 1년 근무자에게 연차휴가 26일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의견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조상욱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대법원이 원심 선고 이후 해를 넘기지 않고 빠르게 입장을 내놓은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며 “법률과 시행령 모두 모호하다는 지적을 받는 중대재해처벌법의 가이드라인 발표에도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곽용희/최진석 기자 ky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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