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직원공제회가 암호화폐인 비트코인에 투자하기로 했다. 국내 연기금 가운데 암호화폐 투자를 결정한 첫 사례다.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암호화폐 관련 상품이 잇달아 출시되는 등 주류 자산으로 편입되자 그동안 전통상품 위주로 보수적인 투자를 해왔던 연기금 사이에서도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25일 자산운용업계에 따르면 국내 최대 공제회인 교직원공제회는 비트코인 관련 상장지수펀드(ETF)에 투자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비트코인 가격과 연동되는 현물 ETF에 우선 투자한다는 계획이다. 국내 자산운용사가 내년 상반기께 비트코인 관련 ETF 상품을 만들어 해외에 상장하면 교직원공제회가 이를 사들이는 방식인 것으로 알려졌다. 구체적인 투자 규모는 투자심의위원회를 거쳐 확정된다.
교직원공제회가 국내 ‘큰손’들에 금기시됐던 ‘코인’ 투자에 나선 것은 최근 ETF 출시 등으로 기존에 지적됐던 거래 불투명성, 관리 취약성 등의 우려가 어느 정도 해소됐다는 판단 때문으로 풀이된다.
비트코인 관련 ETF는 최근 미국 캐나다 등 북미 금융시장을 중심으로 연이어 출시되고 있다. 지난 19일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된 비트코인 선물 기반의 ‘프로셰어 비트코인 스트래티지 ETF’는 상장 첫날 9억8000만달러(약 1조1500억원)어치가 팔려 2004년 금 관련 ETF인 SPDR 골드셰어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거래량을 기록했다. 15일 국내 운용사인 미래에셋자산운용도 캐나다 토론토증권거래소에 비트코인 가격 하락에 베팅하는 ‘베타프로 인버스 비트코인 ETF’를 상장시켰다.
미국 최대 연기금으로 꼽히는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캘퍼스)과 싱가포르 국부펀드인 테마섹 등 글로벌 큰손들은 이미 블록체인 등 암호화폐 관련 분야 기업과 거래소 또는 비트코인 등에 직접 투자하고 있다.
교직원공제회는 교직원이 재직 중 낸 자금을 운용한다. 지난해 말 기준 47조원을 굴리고 있다.
그동안 비트코인 등을 매입하기보다 블록체인 등 관련 기술이나 대체 불가능 토큰(NFT), 거래소 지분 등에 투자하는 사례가 많았지만 최근엔 미국 휴스턴 소방관퇴직연금(HERRF)처럼 아예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을 직접 사들이는 연기금도 등장했다. 아지트 싱 HERRF 최고재무책임자(CIO)는 “암호화폐는 이제 더는 무시할 수 없는 자산이 됐다”고 했다.
암호화폐업계 관계자는 “많은 기관투자가가 암호화폐에 관심을 두고 있었지만 비트코인이 지닌 가격 결정의 불투명성, 민간 거래소의 신뢰도 한계, 해킹 리스크 등을 우려해 직접 투자를 꺼려왔다”며 “하지만 비트코인 기반 ETF 시장이 열리면서 이런 부담이 점차 사라지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주요 연기금의 하나인 교직원공제회의 행보는 연기금뿐 아니라 국내 자산운용업계에 상당한 반향을 불러올 것으로 예상된다. 한 연기금 관계자는 “공적 성격이 강한 연기금은 암호화폐 열풍에 더디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며 “하지만 암호화폐가 점차 주류 자산으로 변모하고 있어 다른 연기금이나 자산운용사도 비슷한 길을 갈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다만 미국 시장에서 비트코인 현물 ETF가 출시되기 어렵다는 점은 변수로 꼽힌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선물 ETF를 용인한 것은 비트코인 선물이 당국 규제를 받는 시카고상품거래소(CME)에 상장됐기 때문”이라며 “비트코인 현물은 당국의 통제가 어려운 민간 거래소에서 사고팔기 때문에 SEC 승인까지 시간이 걸릴 수 있다”고 했다.
김재후/임현우/김종우 기자 h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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