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더해 상법 제382조의4에선 "이사는 재임 중 뿐만 아니라 퇴임 후에도 직무상 알게 된 회사의 영업상 비밀을 누설해선 안 된다"고 비밀유지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또 상법 제397조 제1항에선 "이사는 이사회의 승인이 없으면 자기 또는 제3자의 계산으로 회사의 영업 부류에 속한 거래를 하거나 동종 영업을 목적으로 하는 다른 회사의 무한책임사원이나 이사가 되지 못한다"는 내용의 겸업금지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이런 이사의 의무를 위반해 회사에 손해가 발생한 경우 이사는 상법 제399조에 따라서 회사에 대해 민사상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한다. 만약 회사가 자신의 경영진인 이사에 대해 적극적으로 손해배상청구를 하지 않을 가능성을 고려해 상법 제403조에선 '대표소송 제도'를 채택해 일정 지분율 이상의 소수주주가 회사를 대신해 이사의 손해배상책임 청구를 위한 대표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최근 상법 개정으로 해당 회사 이외에 그 자회사의 이사에 대해서도 대표소송을 가능하게 하는 다중대표소송도 도입됐다. 또 이사의 의무 위반이 문제되는 경우 이사는 형법 제356조 및 제355조에 의한 업무상 배임죄의 책임도 부담해야 한다.
회사와 이사, 주주 등 주체 구분 명확해야
이사가 갖고 있는 의무 부담의 상대방 및 손해 여부 판단의 대상을 확정하는 것이 회사 경영에선 중요하다. 이사 등 경영진의 의무 위반 및 책임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서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소위 '법인격 독립론'을 채택하고 있다. 주식회사의 주식이 사실상 1인 주주에 귀속하는 소위 1인 회사라도 행위의 주체와 그 본인은 분명히 별개의 인격이라는 것이다. 그 본인인 주식회사에 재산상 손해가 발생했을 때 배임죄가 성립하고 100% 주주가 이에 동의했다고 해도 마찬가지라는 입장(대법원 1983. 12. 13. 선고 83도2330 전원합의체 판결)을 30년 가까이 유지하고 있다.
이처럼 회사와 그 주주 혹은 계열회사를 엄격히 구분하는 입장에서 기업집단 내부의 계열회사에 대한 자금 대여 혹은 유상증자 참여 등 지원행위에 대해서도 잘 따져봐야 한다. 대법원은 지원을 받는 계열회사의 해당 회사 영업에 대한 기여도, 계열회사를 지원할 경우와 지원하지 않을 경우 해당 회사에 미칠 것으로 예상되는 이익 및 불이익의 정도 등에 관해 검토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본다. 이를 근거로 해당 회사 독자적인 관점에서 최대 이익에 부합한다고 합리적으로 신뢰하고 신의성실에 따라 경영상의 판단을 내린 경우에 한해서는 이사의 의무 위반이 인정되지 않을 수 있다고 했다(2007. 10. 11. 선고 2006다33333 판결 등).
또 기업 인수합병에 있어서 SPC(Special Purpose Company)등 영업상 실질이 없는 특수목적회사를 통해 대상 회사를 인수하는 경우엔 투자를 위한 일종의 도관(conduit)인 특수목적회사와 대상회사를 엄격히 분리해 이사의 의무와 책임에 대한 법리를 적용하고 있다. 그래서 인수자가 SPC를 통해 금융회사와 인수금융 거래를 통해 대출을 받으면서 대상회사의 자산을 직접 담보로 제공하는 소위 '담보제공형 LBO(차입매수)'의 경우와 대상회사가 인수금융 대출을 위해 직접 자산을 담보로 제공하지는 않되 인수 후에 인수금융 채무가 있는 SPC와 대상회사가 합병을 해 위 인수금융채무를 이전 받는 소위 '합병형 LBO'에 대해 이사의 의무 위반 관점에서 다른 취급을 하고 있다.
그러나 과거와 달리 오늘날 경제와 기업 현실에서는 대규모 기업이 하나의 회사를 유지하면서 단일한 형태로 영업을 영위하는 경우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많은 기업들이 기업집단 형태로 존재하면서 계열회사들과의 상호 협력 및 시너지 창출을 통해서 경쟁력을 강화하려고 하고 있다. 또한 다른 회사에 대한 인수나 합병 등 M&A를 통한 성장전략이 보편화돼 새로운 회사들이 계열회사로 추가돼 대규모 기업집단을 형성하고 있다. 인수 후 통합(PMI) 작업을 통해서 신규 인수회사와 기존 계열회사 간 영업 및 재무상 협력과 시너지 창출을 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반대로 분할을 통해 대상회사의 사업 부문을 새로운 계열회사로 분리해 보다 신속하고 효율적인 의사결정을 가능하게 하기도 한다. 자본시장에서 대상회사의 다른 사업부문의 위험요인에 영향을 받지 않고 해당 사업부문의 가치에 상응하는 평가를 받아서 투자를 유치하려는 경우도 흔히 있는 일이다.
회사의 사업부문과 지주부문을 인적분할을 통해서 분리해 사업부문 회사가 영업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고 자회사 등 관리는 지주회사가 담당하도록 하거나, 회사의 성장 사업부문을 물적분할을 통해서 분리, 자회사로 만들고, 해당 회사가 다시 기업공개(IPO)를 통해 투자유치를 받는 사례 역시 많다.
이와 같이 기업의 성장 과정에서의 인수, 합병 및 분할을 통한 계열회사 증가 및 기업집단의 형성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경영상 필요성을 부인하기도 어렵다. 또한 대규모 금융거래나 투자거래 과정에서 거래 관련 정부 규제나 과세 문제 등을 고려해 실질적 영업이 없는 도관 역할을 하는 SPC 구조를 활용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이런 경우에도 하나의 영업을 위해서 형식적으로는 여러 회사가 계열관계를 가지고 관여하게 된다.
경영 현실 반영한 법리 판단 필요
이사의 의무와 책임에 대한 법리 판단에 있어서도 이러한 기업 현실을 반영한 유연한 태도가 중요하다. 주식회사 이사들의 경영판단에서 기업집단 전체적인 관점에서 전략이나 계열회사와 영업 및 재무 시너지 관계 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이사의 의무 위반 여부 및 책임 판단에 있어서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심지어 100% 주주 관계에 있는 경우에도 주주와 회사를 분리하여 독자적인 관점에서 손해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는 기존의 대법원 판례를 염두에 둬야 한다. 거래의 실질을 기준으로 보면 차이가 없는 담보제공형 LBO와 합병형 LBO를 담보제공의 주체가 SPC인지 인수대상회사인지에 따라서 달리 판단하는 현재의 법리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이 존재하는 이유도 위와 같은 것으로 생각된다.
해외에서도 프랑스의 '로젠블룸 판결'을 필두로 해 기업집단을 통한 경영 현실을 인정하고 이를 이사의 의무와 책임 법리에 있어서도 반영하려는 시도가 확대되고 있다. 대법원도 최근 '대법원 2017. 11. 9. 선고 2015도12633' 판결에서 이런 입장을 반영해 주목받고 있다.
위 판례에서 대법원은 기업집단 계열회사 간 공동 물품 구매 및 신용공여행위 등에 대해 기업집단의 공동목표에 따른 공동이익의 추구가 사실적, 경제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경우라도 기업집단을 구성하는 개별 계열회사는 별도의 독립된 법인격을 가지고 있는 주체로서 각자의 채권자나 주주 등 다수의 이해관계인이 관여되어 있다고 봤다. 사안에 따라서는 기업집단의 공동이익과 상반되는 계열회사의 고유이익이 있을 수 있다고 하면서도 아래의 요소를 고려해 계열회사 사이의 지원행위가 합리적인 경영판단의 재량 범위 내에서 행해진 것이라고 인정된다면 계열회사 고유이익에 손해가 발생한다고 해도 배임죄가 인정될 수 없다고 했다.
△지원을 주고받는 계열회사들이 자본과 영업 등 실체적인 측면에서 결합돼 공동이익과 시너지 효과를 추구하는 관계에 있는지 △계열회사들 사이의 지원행위가 지원하는 계열회사를 포함해 기업집단에 속한 계열회사들의 공동이익을 도모하기 위한 것으로서 특정인 또는 특정회사만의 이익을 위한 것은 아닌지 △지원 계열회사의 선정 및 지원 규모 등이 당해 계열회사의 의사나 지원 능력 등을 충분히 고려해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결정된 것인지 △ 구체적인 지원행위가 정상적이고 합법적인 방법으로 시행된 것인지 △지원을 하는 계열회사에 지원행위로 인한 부담이나 위험에 상응하는 적절한 보상을 객관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었는지 등이다.
위와 같은 전향적인 법리가 향후 추가적인 판례를 통해서 더욱 발전되고 확대되어서 주식회사 이사의 경영판단에 있어서 기업집단 및 계열회사에 대한 고려가 일정한 요건 하에 정당하게 반영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를 통해서 기업집단 형태를 통한 회사 경쟁력 확보 및 기업가치 증대가 보편적인 기업 현실을 이사의 의무와 책임에 대한 사법 판단에 있어서도 반영하여, 현실을 고려한 합리적이고 공정한 판단이 가능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또 주식회사 이사 및 경영진의 입장에서도 현재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법리 및 판례는 기업집단의 공동이익과 당해 회사의 고유이익을 구별하고 있다. 당해 회사의 고유이익 관점에서 이사의 의무 준수 여부를 판단한다는 점을 유의해 이사 및 경영진의 책임 위험 관리를 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동시에 기업집단 현실을 반영한 판례 및 법리가 계속 변화하고 발전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 그 변화 경과에 따라서 회사의 내부 의사결정 구조 및 체계를 정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변호사, 법학박사. 본고는 필자의 개인적인 견해이며, 필자가 속한 법률사무소의 공식적인 입장과는 하등의 관련이 없습니다.
정리=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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