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종전선언의 ‘순서’를 언급하며 한·미 양국의 견해차를 공식 확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종전선언을 시작으로 남북한, 미·북 대화를 이끌어내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제안을 미국이 사실상 거부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설리번 보좌관은 26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 ‘종전선언에 대해 얼마나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한국 정부와 심도 있는 협의를 이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너무 공개적으로 언급하진 않겠다”면서도 이같이 말했다.
지난 12일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설리번 보좌관 간 협의 뒤 “우리 측 입장에 대한 미국 측의 이해가 깊어졌다고 생각한다”고 한 정부 고위당국자의 발언과도 견해차가 있다. 신범철 경제사회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외교적으로 완곡히 거절할 때 ‘검토 중’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는데 단순 검토가 아니라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는 점에서 사실상 거부 의사를 밝힌 것”이라고 분석했다.
종전선언의 ‘시기’에 대해 미국 정부 고위당국자가 공개 석상에서 한·미 간 견해차를 인정한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남·북·미 3자 혹은 남·북·미·중 4자 간 종전선언을 북한 비핵화 협상의 시작점으로 삼자는 이른바 ‘종전선언 입구론’ 제안에 거리를 두는 한편 미·북 대화 재개와 북한의 단계적 비핵화가 종전선언에 앞서야 한다는 ‘종전선언 출구론’에 무게를 실었다는 분석도 나왔다.
이날 발언이 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한·러 외교장관회담 참석차 러시아에 도착하기 직전 나왔다는 점도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27일 양국 장관회담에서 정 장관이 러시아 측에 종전선언 구상을 설명하고 지지를 당부할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이다. 종전선언이 북한을 대화로 이끌기 위한 사전 보상으로 비칠 수 있다는 심리가 반영됐다는 해석도 나온다.
성 김 미국 대북특별대표는 지난 24일 서울에서 열린 한·미 북핵수석대표 협의 뒤 “앞으로도 종전선언을 포함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논의하길 기대한다”면서도 “북한과 ‘아무런 조건 없이’ 만날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종전선언이 북한의 무력도발 시위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작용했다. 종전선언이 단순 ‘정치적 선언’이라는 한국 정부의 입장과 달리 미국은 종전선언이 이뤄졌을 때의 법적 구속력도 심각하게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미국은 북한이 핵·미사일 개발 능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리고 있는 상황에서 종전선언이 이뤄지면 북한의 핵·미사일을 인정하는 것으로 비치는 것을 우려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송영찬 기자 0full@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