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美도 내친 종전선언, 비핵화 없이는 '모래성 쌓기'일 뿐

입력 2021-10-28 17:06   수정 2021-10-29 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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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한국 정부가 밀어붙이는 종전선언에 제동을 걸었다.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안보보좌관은 그제 종전선언에 대해 “우리(한·미)는 (종전선언) 조치를 위한 순서, 시기, 조건에 대해 이견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그간 종전선언을 집요하게 요구해 온 한국 정부에 호응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미국이 특히 ‘순서, 시기, 조건’을 콕 집어 언급한 게 주목된다. 이는 북한 비핵화 조치와 종전선언 간 선후와 관련이 있다. 문재인 정부는 종전선언을 한반도 대화 프로세스를 재가동하기 위한 ‘입구’로 여기고 있다. 종전선언으로 비핵화 논의를 끌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미국은 북한 비핵화가 선행되거나 최소한 이를 보장할 조치가 있어야 종전선언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설리번 보좌관의 발언은 이 점을 축약하고 있다.

답답한 것은 우리 정부다. 정전협정 당사국인 미국이 부정적인 뜻을 밝혔음에도 정부는 “종전선언에 대해 진지한 논의를 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종전선언은 말 그대로 전쟁을 끝낸다는 뜻이다. 상대를 위협하지 않는다는 신뢰가 전제돼야 하고, 그 핵심이 북한 비핵화임은 물론이다. 그러나 북한은 핵시설을 재가동하고, 온갖 미사일을 쏘며 위협하고 있는 마당이다.

더욱이 북한은 종전선언 조건으로 적대시 정책 철회를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다. 한·미 훈련과 미국의 전략자산 전개, 핵우산 제공 등을 없애라는 뜻이다. 종전선언을 하면 주한유엔군사령부의 존립 근거도 없어지고, 이는 주한미군 철수와 한·미 동맹 와해로 연결된다. 북한이 노리는 것들이다. 섣부른 종전선언이 이렇게 한반도 안보지형을 송두리째 흔들 수 있음에도 정부는 대북제재 완화까지 부르짖으며 ‘마이웨이’ 하고 있다. 이러니 내년 대선을 앞두고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기회 삼아 남북한 정상회담 이벤트에 몰두한다는 의심을 사는 것 아닌가.

실질과 명목 측면에서도 종전선언이 필요한지 돌아볼 일이다. 1953년 7월 27일 이후 명목상 휴전이지만, 실질적으로 종전상태가 유지돼 왔다. 그런 상황에서 종전선언에 매달리는 것은 임기 말 ‘업적 만들기’로밖에 볼 수 없다. 북한 비핵화가 전제되지 않은 종전선언은 ‘모래성 쌓기’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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