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고록에서 신 명예회장은 호암 이병철 삼성 창업주를 여러 차례 언급했다. 와세다고교 응용화학과 출신인 ‘청년 신격호’는 그와 와세다대 동문으로 지냈다. 1962년엔 한국경제인협회(현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과 재일 기업인으로 만났다. 당시 이 회장은 “정부가 공업화로 경제 개발을 추진한다 카는데 문제는 자금이요. 재일 상공인들이 적극적으로 투자하시기를 부탁드린다”고 호소했다.
문화재 수집에 관한 에피소드도 소개했다. “일본에 산재한 우리 문화재를 신 회장이 수집하면 어떻겠소?”라는 호암의 제안을 받았다고 했다. 신 명예회장은 “외람되지만 나는 남이 만든 과거의 문화재보다는 내가 미래에 남길 문화재를 창조하는 일에 더 몰두하고 싶었다. 그 마지막에 있는 것이 바로 롯데월드타워”라고 회고록에 남겼다.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와의 만남은 1981년 롯데호텔 회의실 장면으로 그려졌다. 당시 88 올림픽유치민간위원장으로 추대된 정 회장은 “아무래도 올림픽 유치에 실패할 경우 망신당할 사람으로 나를 뽑은 것 같다”며 호탕하게 웃었다고 한다. 신 명예회장은 그를 “현대그룹의 국내외 조직망까지 총동원해 가며 뚝심 있게 스포츠 외교전을 펼쳤다”고 평했다.
박정희 대통령과의 만남은 1962년 4월 장충동의 어느 건물에서 이뤄졌다. 이웃동네 후배였던 이후락 대통령비서실장이 주선자였다. 신 명예회장은 “실내에서도 선글라스를 쓰던 박 대통령이 선글라스를 벗더니 국산 필터를 개발해 만들었다며 아리랑 담배를 권했다”고 회고했다. 당시 만 6세(1962년)이던 조치훈 9단과의 만남도 흥미롭다. 매달 숙식비를 후원해주면서 인연을 맺었다. 훗날 신 명예회장은 “조치훈 프로가 선물로 준 나무 바둑판은 나(신격호)의 가보가 됐다”고 할 정도로 그와의 만남을 즐거워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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