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성차 업체들이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로 회귀하고 있다. 한때 구식 배터리라며 외면했지만 LFP 배터리의 가격과 안전성이 재조명됐기 때문이다. 중저가형이나 도심용 전기차 배터리로 충분히 경쟁력 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이다.
주행거리가 짧다는 한계는 있으나 이를 감안한 배터리 채용이다. 기본형과 장거리형 전기차로 '이원화 전략'을 취하는 제조사들 입장에선 안전성이 보장되지 않은 비싼 배터리를 저가·도심용 전기차에 사용할 이유가 없다. 더군다나 기술 개발을 통해 그간 단점으로 지적되던 LFP 배터리의 주행거리 문제가 일부 개선돼 활용 가치가 올라갔다.
앞서 테슬라는 모든 '기본형 차종(스탠다드 트림)'에 LFP 배터리를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스탠다드 트림은 테슬라 차량 중 가장 주행거리 짧은 트림에 속한다. 뿐만 아니라 폭스바겐, 포드 등이 LFP 배터리 사용을 검토 중이다. 애플카 생산을 추진하는 미국 애플도 LFP 배터리를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의 LFP 배터리 채택 가능성 역시 점쳐진다. 현대모비스는 전날 중국 CATL의 셀투팩(CTP·cell-to-pack) 기술 라이선스·파트너십 계약을 체결했다. 셀투팩 기술은 셀-모듈-팩으로 이어지는 배터리팩 제조 과정에서 모듈 단계를 없앤 중국 CATL의 독자 기술이다. 셀에서 곧바로 팩을 만들 수 있어 비용 절감 효과도 있다.
셀투팩 기술은 주행거리가 짧은 LFP 배터리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개발됐다. 현대모비스는 이 셀투팩 기술을 이용해 배터리 시스템 어셈블리(BSA)를 개발할 계획. 향후 현대차그룹의 전기차 플랫폼 'E-GMP'에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 업계에서 현대차의 LFP 배터리 채용 가능성을 언급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테슬라는 이미 CATL과 협업해 셀투팩 기술을 적용한 LFP 배터리를 일부 모델에 적용해 왔다.
이처럼 전기차 시장에서 다시 LFP 배터리가 부상하는 이유는 가격이 저렴하고 화재 위험성이 적기 때문이다. 인산과 철을 양극재로 사용하는 이원계 제품으로 CATL, BYD(비야디) 등 중국 배터리 업체에서 주로 생산되고 있다. 에너지 밀도가 낮고 주행거리가 짧아 그간 국내 배터리 3사의 니켈·코발트·망간(NCM) 배터리 등 삼원계 배터리 대비 구식 기술로 인식됐다.
그러나 NCM 배터리 화재 발생으로 LFP 배터리의 안전성이 재조명됐다. LFP 배터리는 결정구조가 안정적이라 화재 위험성이 낮다. 상대적으로 비싼 니켈과 코발트 대신 철을 원료로 사용해 삼원계 배터리 대비 킬로와트시(kWh)당 20~30%가량 저렴하다. 배터리 수명도 길다.
도심형이나 단거리용 전기차를 고민한다면 활용 가치가 충분한 셈이다. 켈레니우스 다임러 CEO는 "'E63 AMG' 모델과 같이 고성능 차량을 필요로 하지 않는 도심 주행용 위주 소비자들도 많을 것으로 본다"며 "앞으로 엔트리급(기본) 모델에는 주행거리가 짧지만 저렴한 LFP 배터리를 탑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친환경성이 떨어지고 주행거리가 짧다는 한계는 여전히 남아있다. LFP 배터리는 재사용이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1회 충전 시 주행거리는 평균 300~400km 수준이다. 500~600km 수준인 삼원계 배터리와 비교하면 확실히 짧다. 다만 주행거리 문제는 셀투팩 기술로 어느정도 해소될 수 있다. CATL에 따르면 셀투팩 기술로 LFP 배터리 에너지 밀도가 10~15% 증가한다.
시장은 LFP 배터리의 가능성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우드매킨지는 글로벌 배터리 시장에서 LFP가 차지하는 비중이 2015년 10%에서 오는 2030년 30%로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내년 말 중국이 독점한 LFP 배터리 관련 특허 2건이 만료돼 다양한 시장으로의 진출 가능성도 열려있는 상황이다.
신현아 한경닷컴 기자 sha011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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