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혁신은 시장 교란의 출발점이다. 많은 경우 기존 기업들이 기술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면서 시장 교란이 시작된다. 제품에 실질적인 가치 증가와 무관한 기능을 추가하거나 비용 절감 효과나 편의를 제공하지 않는 회원제 클럽을 신설하는 전략, 온라인 예매가 현장보다 복잡한 영화관 시스템, 교육자원이 아닌 고급 숙박 시설에 투자하는 대학 등의 형태로 나타난다. 이는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한 시점에 위험과 비용을 감수하고 싶지 않은 경영진이 내리는 민간요법과 같은 처방이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이 되자 힘의 균형추는 창업자들로 기울기 시작했다. 그 중심에는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가 있었다. 5년 만에 애플 컴퓨터를 6억달러 가치로 키운 스티브 잡스는 괴팍하고 변덕이 심하다는 이유로 쫓겨났지만, 돌아온 뒤 20년간 애플의 가치는 200배나 증가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인 빌 게이츠 역시 자기 회사 가치를 1000억달러까지 늘릴 수 있다는 걸 증명했다. 이후 14년 만에 6000억달러짜리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의 스콧 갤러웨어 교수는 그의 책 《거대한 가속》에서 1985년 실리콘밸리에는 세상을 바꿀 아이디어를 가진 천재가 가득했으나 자본을 구하기 어려웠고, 2005년에는 진정한 천재는 없는 반면 이용 가능한 자본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고 설명한다.
카리스마 있는 창업자가 많아진 것도 같은 맥락이다. 풍부한 자본과 부족한 재능이 결합하면 강력한 창업자는 기업 자산이 된다. 자본을 유치할 때도, 직원을 끌어모을 때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들은 회사의 견실한 요인을 소개하기보다 매력적인 이유를 설명하는 데 치중한다. 이를 통해 투자자의 주의를 다른 데로 돌리는 데 성공하지만, 성장을 이루면서 동시에 지출보다 수익이 많은 기업을 만드는 게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것은 머지않은 미래에 드러나고 만다.
자본은 움직이는 재산이다. 굴러가지 않으면 생명력을 잃어버린다. 지금까지 자본은 유니콘을 찾아 사방을 돌아다녔다. 그러다 어디에도 유니콘이 보이지 않자 뿔이 없어도, 그리고 날 수 없어도 유니콘이 될 수 있다며 평범한 말을 억지로 유니콘이라고 믿어버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팬데믹 위기 속에 이런 믿음은 더 이상 지속되기 어렵다. 변화된 다양한 상황이 기업가치 평가를 내실 위주로 바꿔 놓을 것이라는 의미다. 이미 혁신기업으로 인정받아 상장된 기업들일지라도 높은 가치를 유지하지 못하는 기업이 많다. 기존 기업의 타성과 신생기업의 매력에 가려졌던 비즈니스 모델과 기업이 영업활동으로 벌어들인 현금창출 능력을 나타내는 지표인 EBITDA 같은 실적을 다시 정비해야 할 시점이다. 될 때까지 그런 척한다고 해서 실제로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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