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치는 돈…美 정크본드 시장에 몰린다

입력 2021-10-29 17:18   수정 2021-10-30 01:07

미국 정크본드(투기등급 채권) 시장에 돈이 몰리고 있다. 미 정부의 경기 활성화 정책 등에 늘어난 유동성이 투기등급 기업 채권으로 흘러들어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기업들은 이런 투자 심리를 이용해 금리가 높았던 기존 대출을 새로운 채권 발행으로 갈아타면서 낮은 비용으로 자금 확보에 나서고 있다.

정크본드는 신용 등급이 BB+나 B+ 이하인 회사가 발행하는 고위험 고수익 채권을 말한다.
정크본드 시장으로 몰리는 돈

파이낸셜타임스(FT)는 S&P글로벌 자료를 인용해 올해 미국에서 149개 기업이 새롭게 정크본드를 발행한 것으로 집계됐다고 29일 보도했다. 2013년 이후 최다 규모다. 지난 9월과 10월에는 각각 26개, 13개 기업이 정크본드를 발행했다.

ICE데이터서비스에 따르면 하이일드(투기등급) 채권 시장에서 미지불된 부채 총액은 사상 처음으로 1조5000억달러(약 1754조원)를 넘어섰다.

앤 러스 골드만삭스 기술책임자는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올 들어 기술 기업의 정크본드 발행액은 지난 4년간을 모두 합친 것보다도 많다”며 “미디어 및 통신 기업이 주로 정크본드를 통해 자금을 조달했다”고 전했다. 메디라인과 같은 헬스케어 기업도 정크본드를 많이 발행했다.

FT는 평판이 좋은 회사들이 정크본드 시장에 진출하면서 기관투자가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가장 최근 정크본드 발행에 나선 미국 게임업체 로블록스가 대표적이다. 이 회사는 10억달러(약 1조1600억원) 규모의 정크본드를 발행하기로 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로블록스는 수익률 연 3%, 8년6개월 만기의 무담보 채권을 발행할 예정이다.

지난 3월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상장한 로블록스는 이용자들이 직접 콘텐츠를 생산·공유하는 게임 플랫폼이다. 5월 기준 1000만 명 이상의 사용자가 이 플랫폼에서 게임을 즐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에는 한국 드라마 ‘오징어 게임’과 비슷하거나 모티브를 따와 만든 게임이 인기를 끌고 있다.

로블록스가 정크본드를 택한 이유는 자금 조달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다. 증자를 할 경우 비용 부담이 작지 않은 데다 주식 가치 변화, 경영권 약화 등의 변수가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로블록스는 올해 미국에서 정크본드 발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한 85번째 상장기업이다.
기업 부채 급증 우려
지난해 코로나19 여파로 신용등급이 하락한 기업들이 늘어났고, 넘치는 유동성이 정크본드 시장까지 흘러들어와 불을 지피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과거 정크본드 시장이 활황이었던 때는 유가가 폭락한 2013~2014년과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이다.

이런 추세는 기업 부채가 급증한다는 측면에서 우려를 키웠다고 FT는 지적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최근 “투자자들의 고수익 추구로 인한 금융 레버리지 증가가 금융 시스템의 취약성을 악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올해 하이일드 채권 평균 수익률은 4.2%로 낮은 수준이다. 투자자들이 크지 않은 보상에도 위험을 감수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브랜디와인 글로벌 인베스트먼트 매니지먼트의 존 매클레인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정크본드 발행 대부분은 과잉 유동성의 부산물일 뿐”이라며 “엄청난 자본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수익성을 쫓아다니는 모습을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런 추세가 금세 잦아들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고 덧붙였다.

박상용 기자 yourpenci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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