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누리호 발사의 숨은 주역들

입력 2021-10-31 17:14   수정 2021-11-01 00:25

2017년 개봉한 ‘히든 피겨스(Hidden Figures)’는 실화를 다룬 영화다. 미국과 소련의 우주 개발 경쟁이 한창이던 1960년대 미 항공우주국(NASA)에서 활약하던 ‘숨은 인재들’의 활약상을 그렸다. 세 명의 흑인 여성이 주인공이다. 수학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캐서린 존슨은 1962년 미국 최초의 유인 우주선 ‘프렌드십 7호’의 궤도 계산 임무를 수행했다. 1969년 인류 최초의 달 탐사선 ‘아폴로 11호’ 프로젝트에도 참여했다. 동료 매리 잭슨과 도로시 본도 항공엔지니어와 컴퓨터 분야에서 각각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다.

영화는 흑인 여성들이 차별과 혐오를 극복하는 과정에 방점을 찍고 있지만, 작은 오차까지도 허용될 수 없는 우주산업의 치밀하고 섬세한 특성을 아울러 보여준다.
프로젝트 참여 98%가 中企
한국형 우주발사체 누리호(KSLV-2)에도 숨은 주역들이 있다. 이번 발사 프로젝트를 묵묵히 수행해낸 중소기업들이다. 비츠로넥스텍은 엔진의 불길이 뿜어져 나오는 ‘연소기’ 개발에 참여했다. 3000도 이상의 초고온과 영하 180도 이하의 극저온 및 고압을 버텨야 하는 발사체의 핵심 부품이다. 비츠로넥스텍이 연소기 제작에 성공하기까지 매달린 시간은 약 10년. 엔지니어의 자존심을 걸고 밤샘 작업과 실패를 거듭한 결과다.

유·공압 및 설비배관 전문업체 한양이앤지는 발사체에 연결해 산화제나 연료, 전기, 가스 등을 주입하는 ‘엄빌리칼(umbilical)’을 공급했다. 탯줄 역할을 하는 장치다. 이 밖에도 한국화이바는 페어링 및 동체 개발을, 스페이스솔루션은 엔진 공급계 부품을 담당했다.

누리호는 엔진 설계부터 제작, 시험, 발사에 이르기까지 국내 300개 기업이 참여했다. 이 중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등 일부 대기업을 제외한 중소기업이 290여 곳에 이른다. 누리호를 채운 각종 부품과 장치의 대부분을 우리 중소기업들이 만든 것이다. 이는 국내 산업 생태계와 닮은 꼴이기도 하다. ‘중소기업 기본통계’에 따르면 국내 중소기업은 688만 개로 전체 기업의 99.9%를 차지한다.

미래 먹거리로 꼽히는 우주산업은 바야흐로 빅뱅의 조짐이 역력하다. 국가 안보에 직결되는 것은 물론 자율주행, 도심항공모빌리티(UAM) 등 다양한 첨단산업에도 인공위성은 필수 인프라로 떠오르고 있다. 스페이스X, 블루 오리진 등 민간 기업의 우주 관광산업도 본격화되는 추세다. 모건스탠리는 2020년 4470억달러의 전 세계 우주산업 규모가 20년 후엔 1조1000억달러로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소·부·장 기업 육성해야
인공위성과 발사체는 정밀 소재, 센서, 제어기술 등이 융합된 첨단 기술의 결집체다. 아직 걸음마 단계인 우주산업이 선진국 수준의 궤도에 오르려면 첨단 소재·부품·장치를 담당하는 중소기업의 제조역량이 더 뒷받침돼야 한다. 이를 위해선 중장기적인 연구개발(R&D) 지원이 필요하다. 미국, 중국 등 강대국도 막대한 예산을 들여 항공우주산업 육성에 나서고 있다.

약 20년 전인 2002년, 일본에선 오사카 지역의 중소기업이 모여 ‘마이도(MAIDO) 프로젝트’에 뛰어든 적이 있다. 소형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겠다는 계획이었다. 당시 직원 30여 명에 불과한 금형업체인 아오키 등 13개 업체가 참여했다. 오사카대와 일본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 등이 이를 도왔다. 세간의 의구심과 비웃음을 뒤로 한 채, 이들 기업은 7년에 걸친 노력 끝에 2009년 1월 크기 50㎤, 무게 50㎏짜리 소형 위성을 발사하는 데 성공했다. 소부장에 강한 히든챔피언의 역량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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