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 6개월 남은 문재인 대통령, 국제사회에 '탄소중립' 대못

입력 2021-11-02 17:18   수정 2021-11-03 02:56

문재인 대통령이 2030년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40% 줄이겠다는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계획을 국제사회에 밝히자 경제계가 망연자실해하고 있다. 임기 6개월여를 남긴 정부가 ‘탄소중립 대못’을 박으며 경제에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을 남겼다는 지적이다.

문 대통령은 1일(현지시간)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제26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 기조연설을 통해 NDC 상향안을 공개했다. 문 대통령은 “종전 목표보다 14%가량 상향한 과감한 목표로, 짧은 기간 가파르게 온실가스를 감축해야 하는 매우 도전적인 과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쉽지 않은 일이지만 한국 국민은 지금이 행동할 때라고 결정했다”고 강조했다.

2015년 체결된 파리기후협정에 따르면 당사국들은 5년마다 NDC를 상향 조정하고, 목표에 대한 점검을 받아야 한다. 한 번 계획을 제출하면 후퇴할 수 없는 ‘톱니바퀴(ratcheting) 원칙’이 적용돼 물릴 수도 없다.

외신들은 한국이 미국 유럽연합(EU) 등 선진국과 함께 탄소중립 대열에 동참했다고 전했지만 경제계에선 ‘외교적 치적’을 앞세워 실현 가능성이 희박한 목표를 던졌다는 우려가 나온다. NDC 상향안에 따르면 한국은 탄소 배출량이 정점에 달했던 2018년 배출한 7억2760만t의 온실가스를 2030년까지 4억3660만t으로 40% 줄여야 한다. 작년에 유엔에 제출한 기존안 대비 14%포인트 높였다. 2030년까지 9년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매년 4.17%씩 감축해야 하는 시나리오다.

감축 여건이 한국보다 좋은 EU조차 연평균 온실가스 감축률이 1.98%인 상황에서 정부 목표가 4.17%로 두 배 이상 높다는 건 애초부터 무리수라는 분석이다. 익명을 요구한 경제계 고위 관계자는 “정부가 일방적으로 정한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선 ‘역성장’을 감내해야 할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경제계 "매년 4.17% 탄소 감축 비현실적…마이너스 성장 우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도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발표해 국제사회의 박수를 받았다. 청와대 관계자는 “한국의 결정이 보다 많은 국가들이 국제 기후결속을 다지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선진국에 버금가는 NDC를 내놓지 않으면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기후악당’이라는 낙인이 찍힐 수 있다”며 불가피성을 지적했다.

하지만 임기가 6개월 남은 문 대통령이 국제사회를 지나치게 의식해 비현실적인 감축안을 내놨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일각에선 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률이 ‘탄소중립 과속’으로 향후 10년 안에 0%대에 들어설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도 나온다. 탄소중립 추진에 따른 직접 비용 외에도 산업 위축으로 인한 고용·소득 감소와 물가 상승도 우려되는 대목이다. 산업 구조가 서비스업 위주인 선진국에 비해 제조업 비중이 높고, 신재생에너지 자원도 부족한 현실조차 고려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산업계에서 나온다.

문 대통령은 NDC 상향안을 공개한 지난달 18일 “정부는 기업에만 부담을 넘기지 않고 정책적·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산업통상자원부도 이날 탄소중립 분야 연구개발(R&D) 투자에 대한 세제 혜택을 대폭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탄소중립을 실현하기 위해선 아직 개발되지 않은 친환경 기술 개발이 급선무라는 판단에서다. 수소환원제철, 이산화탄소 포집·활용·저장(CCUS), 무탄소 가스터빈발전 등이 탄소감축을 위한 대표 기술로 꼽힌다.

하지만 이런 기술들은 아직까지 실험 단계에 머물러 있어 상용화 시점조차 가늠하기 어렵다. 이런 와중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는 명분으로 탄소세까지 꺼내들었다. 기업들의 연간 온실가스 배출량을 기준으로 세금을 매겨 연간 30조원을 걷겠다는 구상이다. 한 재계단체 관계자는 “문 대통령은 국제사회에서 박수를 받았지만 탄소감축의 모든 부담은 결국 기업들에 돌아갈 것”이라고 지적했다.

게다가 이번 COP26 정상회의엔 세계 온실가스 배출 1위인 중국과 3~4위인 인도와 러시아가 모두 불참했다. 이들 국가는 미국과 유럽연합(EU) 주도의 탄소중립에 맞서 ‘부자국가 책임론’을 내세우고 있다. 온실가스 대부분을 산업혁명 이후 서구에서 배출했는데, 개발도상국을 지구온난화 주범으로 몰아가는 ‘사다리 걷어차기’라는 주장이다.

에너지 전문가들은 정부 감축안을 일부 달성할 수 있는 방안으로 원자력에너지를 꼽고 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장을 지낸 박주헌 동덕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에너지전환은 한 세기가 꼬박 걸리는 초장기 과제이므로 절대 조급해하면 안 된다”며 “원전의 계속 운전을 통해 적정 비중을 유지해야 한다”고 했다.

강경민/정의진 기자 kkm1026@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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