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치할 순 없고, 복잡한 건 싫다.’ 연금 투자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연금을 알아서 굴려주는 타깃데이트펀드(TDF)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 사상 처음 순자산 10조원 돌파도 눈앞에 뒀다. 전문가들은 비약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TDF 시장이 당분간 자산운용업계의 최대 격전지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3일 운용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국내 자산운용사가 판매하는 TDF 순자산 규모가 9조9620억원으로 집계됐다. 업계에선 최근 성장 속도를 감안하면 이달 가뿐히 10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보고 있다. TDF는 펀드시장에서 가장 급성장하고 있는 분야다. 2018년 말 1조3730억원에 불과하던 순자산 규모는 3년도 채 되지 않아 600% 이상 급증했다. 특히 작년 말 5조2314억원이었던 순자산 규모는 올해만 두 배가량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말 3조8000억원이던 TDF 수탁액도 10월 말 기준 7조4000억원을 훌쩍 넘어섰다.
TDF가 인기를 끄는 가장 큰 이유는 ‘편리함’이다. TDF 투자자의 생애주기에 따라 은퇴 시기를 고려해 투자 자산 비중을 자동으로 조절해 주는 구조로 짜여져 있다. 2011년 미래에셋자산운용이 TDF와 비슷한 라이프사이클펀드를 출시한 뒤 2016년 삼성자산운용이 한국형 TDF 시리즈를 내놓으면서 시장이 본격 성장했다.
2050년 은퇴자를 위한 ‘2050TDF’ 상품의 경우 가입 초기에는 주식 비중을 높여 공격적인 투자를 하다 은퇴 시점으로 지정한 2050년이 가까워질수록 주식 비중을 낮추고, 채권 비중을 높여 리스크를 줄인다. 생애주기에 따라 일일이 개인이 번거롭게 포트폴리오를 조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장점이다.
같은 은퇴 시점을 설정했더라도 운용사에 따라 세부 전략과 상품 구조가 다르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독자적으로 TDF를 운용하고 있다. “한국인의 라이프사이클은 국내 운용사가 가장 잘 알고 있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삼성자산운용은 미국 캐피털그룹에 운용을 맡기는 형태다. 고객에게 “TDF가 미국에서 첫선을 보인 상품인 만큼 오랜 운용 노하우를 갖고 있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한국투자신탁운용 역시 같은 이유로 글로벌 연금 전문 운용사 티로프라이스에 운용을 맡기고 있다. KB자산운용은 뱅가드와 맺은 자문 계약이 종료되면서 안동현 서울대 교수팀과 개발한 새로운 TDF를 추가로 선보였다.
운용사가 공격적인 마케팅을 하는 이유는 돈이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TDF시장 1위는 미래에셋(10월 말 순자산 기준)으로, 점유율은 43.46%에 달한다. 그 뒤를 삼성(22.48%), 한투(13.01%), KB(9.18%), 신한(6.19%) 등이 잇고 있다. 금융지주의 탄탄한 지원 사격을 받고 있는 KB와 신한이 최근 1년 새 점유율을 끌어올리고 있다.
업계에서 가장 공들이고 있는 것은 연금시장에 새롭게 진입한 MZ세대(밀레니얼+Z세대)다. “연금 투자를 하긴 해야겠고, 복잡한 건 싫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가장 쉽고 편리한 투자를 하고 싶다”는 이들이 주로 모여 있는 젊은 세대가 TDF에 적합한 고객이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미래에셋증권을 통해 TDF에 가입한 고객을 연령별로 분석한 결과 20대의 전체 연금 자산 가운데 TDF가 차지하는 비중이 약 15%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 자릿수에 불과한 3040대 남성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은 수치다. 20대 여성(16.27%)은 은퇴 이후의 삶을 가장 많이 고민하는 50대 남성(15.34%)보다 TDF 가입 비중이 높았다.
박재원 기자 wonderfu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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