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의 시장가치(시가총액)가 1조달러가 되기까지 42년 걸렸지만, 2조달러로 불어나는 데는 고작 20주(2020년 3~8월)면 충분했다. 미국 소매업의 온라인 비중은 2000년부터 연평균 약 1%포인트 늘어 2020년 초 16%였는데, 코로나 상륙 후 8주 만에 27%로 급등해 그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이뿐인가. 시총 1000억달러에서 1조달러가 되기까지 아마존이 8년 걸렸는데, 테슬라는 2년 만에 도달했다.
4차 산업혁명, 디지털 전환 같은 대변혁이 코로나라는 로켓엔진으로 가속도가 붙었다. 얼마나 더 빠르게 변할지 가늠조차 힘들다. 여기에다 글로벌 공급망·물류·에너지 등에서 축이 흔들리는 형국이다. 한국도 결코 예외일 수 없다. 비대면, 재택, 모바일상거래, 메타버스 등이 일상이 됐다. 소비 중 온라인 비중이 2018년 18.8%에서 올 8월 28.0%로 껑충 뛰었다. 음식서비스, 여행·레저 등을 다 합치면 전체 소비의 37.3%가 비대면이다. ‘카카오 제국(카카오뱅크·페이)’ 시총이 53조원으로 금융주 중 압도적 1위다. 한 번도 경험 못한 세상을 앞당겨 살고 있는 셈이다.
세상 변화의 크기와 강도는 물리적 시간에 비례하지 않는다. 코로나 2년은 전(前)근대 한 세기보다 더 큰 단층을 만들고 있다. 어제도 변했고, 오늘도 변하며, 내일도 변할 것이다. 개개인 차원의 적응도 쉽지 않지만, 진짜 두려운 건 ‘국가 방향타(舵)’가 돼야 할 정치가 나라를 어디로 끌고 가는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거꾸로 간 5년의 허송세월이 그렇다. 문재인 정부는 노동·연금·고등교육(대학) 등의 힘든 구조개혁은 정말 아무것도 안 했다. 아무리 어렵고 인기 없어도 미래를 위해 꼭 해야 할 것들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선도국가가 되겠다던 다짐도 허언(虛言)이었을 뿐이다. 대신 부동산 탈원전 등 정책은 정치화하고, 진영논리와 극성 팬덤에 기댄 정치는 종교화됐다. 교주에 대한 찬양이 드높을수록 내로남불과 위선이 독버섯처럼 자라고, 법치 자유 민주 공정 정의 같은 양보할 수 없는 가치조차 상대성 원리에 지배된다.
앞으로 5년은 다를까. 대선판을 보면 ‘오늘만 살자’식 포퓰리즘이 만개할 조짐이다. 4류 퇴행정치가 하루아침에 바뀔 리 없겠지만, 여야 후보들에게서 큰 그림의 국가비전과 전략은 눈을 씻고 봐도 안 보인다. 그럴 능력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도덕성과 진실마저 실종됐다. 국민은 주거·일자리·물가 고통에 풀죽고 꿈을 잃어가는데, 잠룡들은 대권꿈만 잘도 꾼다.
여당 이재명 후보는 전 국민 100만원, 주 4일제, 식당 총량제, 부동산 개혁 등을 내걸면서 경제성장 회복이 제1공약이라고 한다. 하지만 말로만 성장일 뿐, 정부 주도의 ‘소득주도성장 시즌2’로 갈 소지가 다분하다. 그러면서 ‘이재명은 합니다’란 슬로건을 내걸었으니 후진기어 넣고 급가속하겠다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게다가 선거 코앞에 옛날 고무신 돌리듯 공짜 지원금을 뿌리겠다는 것은 국민을 ‘시대의 공범’으로 만드는 격이다.
야당 후보들도 다를 게 없다. 국가 운영의 큰 그림은 없이 ‘반(反)문재인·반이재명’이 공약인 듯하다. 오히려 안철수 후보가 과감한 정부조직 개편, 청와대 절반 축소, 과학기술 중심국가 전환, 공공·노동·교육·연금개혁 등 반드시 해야 할 일을 언급해 철들었다는 소리를 듣는다.
김세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의 발견처럼, 한국의 장기 경제성장률은 5년마다 1%포인트씩 어김없이 추락하고 있다. 이를 되돌리지 못한다면 성장이 멈춘 나라가 되는 건 시간문제다. 반면에 고령화, 인구 감소, 좀비기업, 부채, 격차, 고용 절벽, 노동경직성 등 구조적 난제들에 가속도가 붙었다. 나랏빚도 문재인 정부 5년간 400조원 늘어 내년 1000조원인데, 2029년엔 2000조원을 넘는다는 경고다.
어떤 나라든 구조개혁을 외면하면 반드시 대가를 치렀다. 다음 정부는 지축이 흔들리는 대전환의 시대를 끌어가야 한다. 나라 미래를 가불(假拂)하고, 젊은 세대를 착취하는 정치는 이제 끝내야 한다. 베네수엘라의 길로 갈지, 북유럽 강소국의 길로 갈지 기로에 서 있다.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