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돔 착용 약속을 어기고 성관계를 하면 성폭행이될까. 캐나다 대법원의 판결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워싱턴포스트, 캐나다 CBC 방송 등은 3일(현지시간) 캐나다 대법원에서 콘돔 착용을 조건으로 성관계를 동의받은 남자의 성범죄자 처벌과 관련한 재판이 진행된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고소인은 2017년 온라인으로 남성 로쓰 맥켄지 커크패트릭(Ross McKenzie Kirkpatrick)을 만났다. 고소인은 성관계에 앞서 콘돔을 착용해야 한다고 밝혔고, 커크패트릭 역시 이에 동의했다.
두 사람은 두 번의 잠자리를 가졌는데, 처음에는 콘돔을 꼈지만, 두 번째엔 콘돔을 끼는 척만 했을 뿐 실제로 착용하지 않았다는 게 고소인 측의 입장이었다.
2018년에 진행된 1심에서는 커크패트릭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지난해 항소심 재판에서 판사들은 "상고 재판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판단을 했다.
이날 대법원에서는 짧은 청문회를 진행했다.
재판에서는 2014년 대법원이 성관계 중 고의적으로 콘돔을 파괴한 남성에게 유죄 판결을 한 사건이 언급됐다. 피의자 크레이그 자렛 허친슨(Craig Jaret Hutchinson)은 콘돔 착용을 약속하고 여성과 성관계를 맺었지만, 여성 몰래 콘돔에 구멍을 뚫었고, 여성은 임신했다. 당시 재판부는 허친슨의 행위가 사기에 해당하고, 여성의 성관계 동의가 그의 속임수로 무효화됐다고 판결했다.
커크패트릭 측 변호사 필 코트(Phil Cote)는 "피고인은 여성을 속이려 한 적이 없고, 성관계 중 콘돔이 없다는 걸 암시했다"며 "유죄로 인정될 경우 성범죄자가 된다. 피의자에게 매우 심각한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호소했다.
재판에 소송참여인 자격으로 출석한 여성 법률지원단체 '서해안 여성법률교육행동재단'(West Coast Women's Legal Education and Action Fund, West Coast LEAF)의 케이트 피니(Kate Feeney) 변호사는 "법이 실생활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콘돔으로 성관계를 하기로 합의했고, 그 합의를 위반했다면, 피해자는 동의하지 않은 체액을 접촉하게 된 것"이라며 "이게 위반 행동의 핵심이다. 성범죄에서 가장 중요한 '동의'를 위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법원의 판단에 따라 성관계 중 동의 없이 콘돔을 제거하는 것을 뜻하는 속어인 '스텔싱'의 법적 근거가 더욱 명확하게 제공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피니는 "(대법원이) 성폭행법 내에서 콘돔을 몰래 제거한 행위를 '동의' 위반으로 정의한다면, 여성과 남성, 그리고 하급 법원에 법적인 명확성을 제공할 것"이라며 "성폭행법은 지속적으로 발전시키고, 더 넓은 사회에서 일어나는 대화와 함께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최근 세계적으로 성관계 중 상대방의 동의 없이 콘돔을 빼는 행위를 범죄로 보는 추세다. 지난달 미국 캘리포니아는 스텔싱을 민사상 범죄로 규정했다. 호주에서도 스텔싱을 범죄로 규정했다.
올해 4월에는 뉴질랜드 법원이 스텔싱 행위를 한 남자에게 강간죄를 적용해 유죄를 선고했고, 2018년 독일 베를린 법원도 비슷한 행동으로 기소된 경찰관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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