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청개구리' 해외 자원개발

입력 2021-11-08 17:08   수정 2021-11-09 00:20

한국석유공사는 올해 초 페루에 있는 석유회사를 고작 236만달러(약 28억원)에 매각했다. 2009년 7억달러(약 8300억원)를 주고 산 회사를 ‘껌값’에 팔아치웠다. 한국광물자원공사(현 한국광해광업공단)도 연초 칠레 산토도밍고 구리광산을 매입가(2억5000만달러)의 절반 이하인 1억2000만달러에 팔았다.

그 사이에 국제유가는 7년 만에 최고치로 급등했다. 구리 가격도 지난해 평균보다 60% 이상 올랐다. 배터리 핵심 소재인 리튬은 2.5배, 희토류는 1.5배까지 뛰었다. 그런데도 한국석유공사와 한국광해광업공단의 ‘헐값 매각’은 계속되고 있다. 현 정부의 ‘MB(이명박) 해외 자원개발 백지화’에 따른 것이다.

한국의 에너지와 광물 수입의존도는 95%에 이른다. 전기차 배터리나 반도체 제조에 필수인 금속광물은 99% 수입하고 있다. 리튬·코발트 자급률은 0% 수준이다. 2차전지 원재료도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이들 핵심광물 수요는 글로벌 탄소중립 추진에 따라 2040년까지 지금의 4배로 늘어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우리 경제의 사활이 걸린 자원개발은 정권마다 이념에 따라 뒤집을 게 아니라 백년대계 차원에서 봐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번 정부가 씨를 뿌리면 다음 정부가 물을 주고, 그 다음 정부가 수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얘기다. 해외 자원개발은 안정적 자원 확보뿐만 아니라 ‘장기 비축’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정부가 해외 유전과 광산을 이처럼 헐값에 급매할수록 국내 산업계는 원료 확보전에서 그만큼 밀릴 수밖에 없다.

지금은 4차 산업혁명과 탄소중립, 공급망 쇼크가 한꺼번에 겹친 자원전쟁 시대다. 중국은 국가·기업·은행이 힘을 합쳐 아프리카 등에 대규모 차관을 주고 자원으로 상환받는 방식의 장기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일본은 정부기관과 종합상사를 필두로 2030년 석유·가스 자주 개발률을 40%까지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 신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른 석유 수요 감소에도 불구하고 자원개발 투자는 더 늘리고 있다.

이에 비해 한국은 자원개발 문제를 지나치게 정치적으로 접근하는 바람에 전문적 식견을 가진 개발주체나 관료, 경영진이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요즘 같이 냉혹한 국제 교역환경에서 낡은 이념과 도그마에 발목 잡혀 청개구리처럼 거꾸로 뛰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자원 재앙’에 빠질 수도 있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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