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잡앤조이=심민경 그립컴퍼니 매니저] 눈 뜨고 일어나보니 스타트업에 다니고 있다. 이게 무슨 일일까. 분명 국제기구에서 일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영국 유학길에 오른 나였는데 스타트업의 형용할 수 없는 매력에 빠져 첫 커리어를 스타트업에서 시작하게 되다니. 졸업 후 한국으로 돌아와 취업하려고 하니, 남들이 하나씩은 보유한 인턴 경험, 자격증, 어학 점수가 단 하나도 없었다. 구직 시장에서 나의 가치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는 게 느껴져 속이 쓰렸다. 게다가 입학보다 졸업 난이도가 높은 영국 대학교를 졸업하려고 하니, 취업과 학업 사이의 저글링으로 나는 지쳐가고 있었고, 졸업 이전에 반드시 취업해야겠다는 강박도 나를 덮쳤다. 그래서 방학 때마다 한국에 들어가 기업이 주최한 설명회에 참석하며 구직을 얼른 끝내야겠다고 결심했다.
정말 오랜만에 취업을 준비하던 시절, 그러니까 6년 전 이력서, 자기소개서를 읽어봤다. 뭘 하겠다고는 하는데 그렇다고 간절함도 없는 진부한 표현의 변주에 왜 서류부터 탈락했는지 잘 알 것 같았다. 냉정하게 돌이켜보면 가고 싶은 마음 자체가 없었으니 결과가 좋을 리가 없었다. 취업이라는 큰 태스크를 빠르게 끝내고 싶었던 것뿐이지, 특정한 업무를 정말 미친 듯이 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으니까. 그래도 학부 생활을 하며 경험한 프로젝트, 강연 기획의 기회가 이후 직무 선택에 큰 영향을 줬기 때문에 내가 주체적으로 만들어갈 수 있는 직무들에 관심을 두게 되었고, 안타깝게도 규모가 있는 기업의 채용 공고에서는 내가 원하는 직무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냥 주어진 일보다 내 마음이 움직여 내 손으로 만들어가는 일을 하고 싶은데, 창업하지 않는 이상 내가 원하는 일을 발견하긴 어려웠고, 그렇다고 창업에 도전할 역량은 없었다. 자소서와 논문 무덤에서 지쳐가는 중, 학부 시절 같이 프로젝트를 했던 친구가 나에게 어울린다며 어떤 스타트업의 채용 정보를 전달해줬다. 공고를 전달받자마자 나는 그 포지션에 적힌 내용에 매료됐다. 마치 그 팀에서 일하는 내가 상상되는 느낌이었으니까. 그 팀에 합류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해 자소서를 가득 채우며 밤을 지새웠고, 두 번의 인터뷰를 거쳐 내가 꼭 가고 싶었던 팀에 합류하게 되었다. 나라는 사람은 정말 일에 있어서 그 어떤 조건보다도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에 흥미를 갖는다는 것을 알게 된 하나의 사건이자 시작이었다.
스타트업에 다니는 사람들이 한 번씩은 들어본 질문이 있다. 스타트업으로 이직하게 된 계기 혹은 동기에 관한 질문. 굳이 왜 스타트업으로 갔냐는 질문. 각자 답은 다르고, 이유에 대해 헤아릴 수 없다. 규모에 따라 다르지만 스타트업은 솔직히 혹독한 업무강도와 외로운 싸움이 기다리고 있는 카오스와 같은 곳 아닌가. 어떤 팀은 그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걸으며 혁신을 막는 규제와 싸우고 있고, 또 어떤 팀은 오랫동안 견고하게 자리 잡은 시스템의 레거시와 싸우는 중이다.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발 벗고 현장을 뛰어다니는 팀 또한 셀 수 없이 많다. 각자 스타트업에 합류한 이유는 다르지만 다들 두 눈을 반짝이며 문제를 해결한다.
‘시장과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면서 개인과 조직이 동시에 성장하고, 이런 경험을 나의 자산으로 만들 수 있는 곳’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스타트업을 선택하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 현장에는 어떻게든 이슈를 효율적으로 해결해보려는 사람들이 매일 머리를 맞대고 있다. 사족을 붙이면, 때로는 비효율과도 싸워야 할 때도 많다. 그렇지만 이를 통해 배우고, 개선하는 맛에 회사에 다닌다. 일 잘하는 동료 덕분에 나도 더 좋은 동료가 되고 싶다는 건강한 피어 프레셔 (peer pressure), 오랫동안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몰입한 뒤 해결했을 때 나오는 도파민, 개인의 회고와 피드백을 통한 고속 성장은 스타트업에 중독될 수밖에 없는 요소다. 솔직히 다신 스타트업에 가지 않겠다고 마음속으로 몇 번이고 다짐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눈 뜨고 보니 나는 또 스타트업에 다니고 있다.
심민경 씨는 어쩌다 첫 직장으로 스타트업을 선택하게 되어 스타트업 문화에 빠진 5년차 직장인. 현재 라이브커머스 회사 그립컴퍼니에서 사업개발 매니저로 근무하고 있다.
kh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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