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과생들의 최후의 보루로 여겨졌던 은행권 내 고용 절벽이 대두되고 있다. 올해 하나은행과 우리은행이 신입사원 공개채용을 하지 않기로 하면서다. 고연봉 일자리로 분류되는 은행들이 채용문을 좁히는 가운데, 2금융권에 해당하는 대형 저축은행이 잇따라 신입직원 공채를 열면서 실의에 빠진 취업준비생들의 대안으로 각광받고 있다. 신입 초봉이 5000만원대로 금융권 내에서도 급여 수준이 높은 편인데, 2030세대가 추구하는 '워라벨(일과 가정의 양립)' 문화까지 갖추면서다.
13일 저축은행 업계에 따르면 SBI저축은행은 오는 18일까지 대졸 신입사원을 공개 채용한다. 모집 분야는 금융영업과 금융일반, 통계, IT다. SBI저축은행은 전공, 어학성적에 제한을 두지 않고 국내외 대학 학사 이상이면 누구나 지원할 수 있는 파격적인 채용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선발 인원도 제한을 두지 않는다. 우수 인재가 많을 경우 최대한 많은 인력을 수용하기 위해서다.
신입 초봉은 5000만원 초반 수준이다. 각종 인센티브와 복리후생비를 포함해서다. 업계 1위 대형 저축은행의 위상에 걸맞은 복지혜택도 제공한다. 임직원의 정시 퇴근을 위해 근무 시간이 지나면 컴퓨터가 자동으로 꺼지는 PC오프제를 실시하고, 여가 생활을 지원하고자 콘도·리조트 등 휴양시설을 제공한다. 여기에 각종 경조금부터 의료비, 학자금까지 지원한다.
OK저축은행을 핵심 계열사로 둔 OK금융그룹은 지난달 100여명 인력을 뽑는 대규모 신입·경력 공개채용에 나서면서 업계 이목을 끌었다. OK저축은행의 신입 초봉 수준도 5000만원을 웃돈다. 고정 인센티브와 복리후생비 등을 포함해서다. 임직원의 건강 복지 향상을 위해 본인과 가족 대상 의료실손 보험 가입, 건강검진 등도 지원한다. 올해 공채의 경쟁률이 지난해 하반기 집계된 30대 1을 뛰어넘을 것이란 게 업계 전망이다.
적극적인 인재 영입 의지를 보이는 저축은행업계의 행보는 채용문을 좁히고 있는 시중은행과 대조된다. 금융감독원 금융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기준 저축은행 79곳의 임직원 수는 9726명으로 1만명에 육박했다. 이는 지난해 6월 말 집계된 9585명보다 1.5% 늘어난 규모다. 케이뱅크와 카카오뱅크를 제외한 국내 은행의 임직원 수는 같은 기간 11만 7834명에서 11만 5804명으로 1.7% 감소했다.
저축은행업계 인력 수요가 커진 데에는 가파른 성장세의 영향이 컸다. 올해 6월 말 국내 저축은행의 총자산은 102조4384억원을 기록했다. 저축은행의 총자산이 100조원을 돌파한 것은 금감원이 1999년 6월 집계를 시작한 이래 처음이다. 작년 6월 말 집계된 82조4979억원과 비교하면 1년 사이에 무려 자산이 24.2% 늘어났다.
저축은행이 비대면 금융, 기업금융 등으로 사업 범위 확장에 속도를 내고 있는 만큼 추후 채용 규모가 확대되고 연봉 수준이 상향될 여지가 크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실제로 국내 저축은행의 올해 상반기 누적급여 총액은 3305억원으로 2분기 기준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누적 급여 총액이 2997억원이었단 점을 감안하면 10.2% 불어났다. 이는 5년 전 3분기 누적 급여 총액인 3368억원에 근접한 규모다.
저축은행업계 관계자는 "업계의 성장성과 경쟁력이 부각되면서 취업준비생의 지원 규모가 과거보다 커진 것이 사실이다. 높은 급여 수준으로 취업준비생 사이에서 선호도가 높아지면서 고스펙 인력 유입도 꾸준한 편"이라며 "시중은행보다 인재 영입 의지가 클 뿐만 아니라, 자금력도 확대되고 있는 만큼 계속해서 채용 규모와 처우가 좋아질 여지도 충분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수현 한경닷컴 기자 ksoohy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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