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모씨(39)는 이달 초 인스타그램에서 이 같은 광고글을 봤다. “암호화폐에 대신 투자해 최대 열 배 수익을 내주겠다”는 내용이었다. 김씨는 호기심에 100만원을 이 업체 계좌로 송금했다. 돈은 하루 만에 300만원으로 불었다.
곧바로 돈을 출금하려고 하자 해당 업체는 “500만원을 더 투자해야 돈을 찾을 수 있다”고 했다. 사기임을 직감한 김씨는 자신이 투자한 돈을 해당 업체가 빼가지 못하도록 은행에 신고했다. 하지만 업체의 계좌를 지급정지시킬 수 없었다. 현행법상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을 제외한 사기는 계좌를 지급정지할 법적 근거가 없어서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7년 8만740건이던 사이버 사기 검거 건수는 매년 증가해 지난해엔 12만7233건으로 불어났다. 지난 4일에는 가짜 암호화폐 투자 사이트를 만들어 투자금 15억원을 받아 챙긴 일당 19명이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다.
문제는 사기 수법이 지능화하고 있지만, 피해 회복의 첫걸음인 계좌 지급정지 제도가 아직 도입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보이스피싱을 제외한 다른 사기 혐의는 범죄에 쓰인 계좌를 동결할 법적 근거가 마련되지 않은 실정이다.
보이스피싱은 ‘통신사기피해환급법’에 따라 범행이 의심되면 계좌 지급정지가 이뤄진다. 하지만 돈을 받아 대신 투자하는 등의 행위는 지급정지 대상에서 빠져 있다. 전기통신금융사기 범주에서 ‘재화의 공급 또는 용역의 제공 등을 가장한 행위’를 제외한 탓이다. 경찰 관계자는 “보이스피싱을 제외한 사기 범죄에 대해서도 지급정지를 요청할 수는 있지만, 법적 근거가 없는 데다 해당 업체로부터 소송당할 위험 때문에 은행에서 지급정지 처리를 거의 안 해준다”고 설명했다.
지급정지가 늦어지면 범죄수익 환수에도 어려움을 겪을 공산이 크다. 현재 범죄수익 환수는 몰수·추징 보전 제도에 따라 이뤄진다. 경찰이 신청하면 검찰이 청구한 뒤 법원이 인용 여부를 결정한다. 신청부터 법원 결정까지 며칠이 걸린다. 법원이 몰수·추징 보전 결정을 최종적으로 내리기 전에 계좌에서 범죄 자금이 빠져나갈 수 있다는 얘기다.
국회에는 다른 금융사기 범죄에도 지급정지 조치를 내릴 수 있도록 하는 법안(다중사기범죄의 피해 방지 및 구제에 관한 법률 제정안)이 계류 중이다. 이와 관련, 계좌 지급정지 대상을 확대하면 허위 신고로 계좌 주인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한 경찰 관계자는 “예금은 범죄 혐의자들이 입출금을 손쉽게 할 수 있는 만큼 초기 수사 단계에서 자금을 동결할 수 있도록 제도가 개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양길성 기자 vertig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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