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 많이 줄여도 산재 많으면 ESG 점수 '꽝'

입력 2021-11-15 17:11   수정 2021-11-16 00:16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공시와 관련해 시중은행은 정보기술(IT) 보안, 증권회사는 직원의 다양성과 윤리성 관련 항목이 중요해질 전망이다. 화학 업종은 공정 안전, 비상사태 대응, 유해 폐기물 관리 등이 주된 공시 사항이 될 것으로 보인다.
중요한 항목만 숫자로 공시

15일 업계에 따르면 금융위원회 회계기준원은 최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미국 지속가능회계기준위원회(SASB) 공시 기준서의 한글 번역본을 발간했다. SASB가 제시한 77개 산업별 지속 가능성 공시 기준 가운데 10개 업종의 기준을 공개했다. 백과사전식 지속가능보고서와 달리 일정한 항목을 틀에 맞춰 공개해야 하는 것이 특징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국제회계기준(IFRS)재단이 준비 중인 ESG 공시에도 SASB의 기준을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며 “공시 의무화에 대비하는 기업들에 도움을 주기 위해 번역본을 내놓게 됐다”고 말했다.

SASB 기준서는 산업 특성에 따라 기업의 ESG 공시 항목을 차별화했다. 세제 휴지 건전지 면도기 등 생활용품 제조업은 제품의 소비자 안전, 포장재의 환경 영향 등과 관련한 계량 지표를 공시해야 한다. 예컨대 ‘고위험성 화학물질을 사용해 만든 제품의 수익’이 공개 대상 항목이다. 온실가스 등 유해물질 배출과 에너지 사용량 등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ESG 공시 항목은 철강 등 일부 제조업과 발전업에만 해당된다.

공시 기준에서 말하는 지속 가능성은 환경·사회적 리스크 관리뿐 아니라 기업 재무성과 유지 가능성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금융사의 경우 친환경 업무차량 도입, 재생용지 사용 등은 부차적인 요소다. 금융 리스크 관리와 투자 대상 건전성 등이 훨씬 더 중요한 기준이다.

증권사는 인력의 다양성을 비중 있게 살핀다. 직원의 인종·성별 등 배경이 획일적이면 투자 리스크가 커진다는 것이 SASB의 판단이다. 이 같은 기준이 국내에 도입되면 증권사의 여성 간부 비율이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사회공헌보다 산업재해율이 중요

제조·건설 업종은 공통적으로 종업원 보건 및 안전 관련 사항을 공시해야 한다. 산업재해율이 높으면 사회공헌 사업을 많이 하거나 본사를 친환경 사옥으로 지어도 ESG 점수를 대폭 올리기 어렵다는 얘기다. 건설업 가운데 주택건설업은 토지 이용의 생태학적 영향, 신규 개발의 지역사회 영향 등을 보고해야 한다.

정부와 회계업계 등은 기업들이 ESG 공시 의무화에 선제 대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IFRS재단은 이달 초 열린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 회의에서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를 설립하고, 내년에 ESG 공시기준 초안을 내놓겠다고 발표했다. 이와 관련해 금융위 관계자는 “국제적 기준이 정해지면 과거 기업 회계 부문에서 IFRS를 대부분 받아들인 것과 비슷하게 국제 기준을 도입하는 절차를 밟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국내에선 2025년부터 자산 2조원 이상 유가증권시장 상장사가 ESG 공시 의무 대상이며, 2030년엔 전체 유가증권시장 상장사의 ESG 공시가 강제될 예정이다. 지금까지 구체적 공시 기준은 마련되지 않았다. 글로벌 표준으로 채택될 것으로 예상되는 ISSB의 공시기준은 SASB 공시를 뼈대로 환경에 특화된 기후관련재무정보공시태스크포스(TCFD)의 지침을 결합한 형태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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