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고압 경제' 실험, 희생양은 국민?

입력 2021-11-15 17:15   수정 2021-11-16 00:45

지난달 미국의 소비자물가(CPI)가 작년 같은 기간보다 6.2% 급등했다. 인플레이션이 미국 경제를 괴롭혔던 1981년 이후 보지 못했던 수치다. 집값 상승세가 반영되면서 몇 달 내 물가가 7%에 달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지난 10여 년 동안 2% 미만에서 안정됐던 물가가 치솟은 건 사상 초유의 ‘고압 경제(high-pressure economy)’ 실험 탓이다. 경기 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중앙은행이 충분한 돈을 풀고, 정부도 동시에 재정을 쏟아부어 일시적으로 경제를 과열 수준으로 달구겠다는 정책이다.
여섯 배 급증한 '달러 살포'
집권 민주당이 ‘고압 경제’ 실험에 나선 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경험에 기반한다. 당시 미 정부가 푼 돈은 8300억달러에 불과했다. 미 중앙은행(Fed)의 양적완화 규모도 6년간 3조7000억달러 수준이었다. 경제성장률은 회복 초기 4년 동안 평균 약 2%에 그쳤고, 실업률이 위기 이전 수준인 4%대까지 떨어진 건 2016년 1월이었다.

민주당은 이를 부양책 부족 탓으로 봤다. 재닛 옐런 재무장관은 Fed 의장이던 2016년 “강력한 총수요와 빡빡한 노동시장을 가진 ‘고압 경제’를 일시적으로 운영해 글로벌 금융위기가 공급 측면에서 미친 부정적 영향을 되돌릴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지금 조 바이든 행정부는 그런 옐런의 말을 실천하고 있다. 작년 3월부터 미 행정부가 부양책으로 쏟아부은 돈은 5조2410억달러에 이른다. Fed도 지난 20개월간 4조5000억달러를 풀었다.

그 결과는 어떨까. 올해 미국의 성장률은 연 6%(국제통화기금 추산)로 예상되고 있다. 지난해 4월 14.8%까지 치솟았던 실업률도 지난달엔 4.6%로 하락했다. 주식 부동산 등 자산 가격 폭등으로 미국 가계의 부는 지난 6월 말 141조7000억달러로 팬데믹 이전보다 31조달러(28%) 증가했다.

실험 결과가 좋기만 한 건 아니다. 우선 물가가 뛰고 있다. 소고기값은 전년 대비 30% 폭등했고 휘발유는 7년 만에 최고치로 솟구쳤다. ‘달러 살포’로 수요가 급증했지만 공급이 따르지 못해서다. 공급망 혼란을 풀려면 구인난부터 해결해야 한다. 하지만 일할 사람이 없어 기업은 아우성이다. 9월 채용 공고는 1040만 건으로 실업자 768만 명을 웃돈다. 월가에선 주식 부동산에 암호화폐까지 폭등하다보니 수많은 미국인이 은퇴했거나 구직을 늦추고 있다고 추정한다. 골드만삭스는 팬데믹 이후 노동시장을 떠난 500만 명 중 330만 명이 55세 이상이며, 이 중 250만 명은 사실상 은퇴해 노동시장에 돌아오지 않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구인난이 일시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인플레 피해는 결국 국민에
옐런 장관과 제롬 파월 Fed 의장은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일 것이라고 주장한다. 시간이 흐르면 공급망 혼란이 풀리면서 물가가 안정될 것이란 예상이다. 문제는 이 실험이 실패하면 후폭풍이 클 수 있다는 것이다. 물가 앙등은 미국인에게 타격을 주고 있다. 10월 시간당 소득이 전달보다 0.4% 늘었지만 CPI가 한 달 만에 0.9% 상승한 것을 고려하면 실질 소득은 0.5% 감소한 셈이다. 인플레이션이 계속된다면 Fed는 급히 기준금리를 올려야 할 것이다. 이는 자산 가격 붕괴와 실업률 상승, 경기 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

한국에서도 내년 대선을 앞두고 ‘기본소득’ ‘전 국민 재난지원금’ ‘50조 손실보상’ 등 공약이 쏟아지고 있다. 돈을 뿌려대면 결국 국민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게 미국의 ‘고압 경제’ 실험에서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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