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이재용의 '인사혁신' 실험…30대도 성과내면 '임원 직행'

입력 2021-11-16 17:21   수정 2021-11-24 16:04

삼성전자의 김모 프로는 대리급 직원(CL2) 시절 3년 연속 인사평가에서 EX(excellent)를 받은 사내 ‘에이스’다. 인사평가에 따라 연봉등급도 매년 ‘가’ 등급을 받았다. 하지만 지난해 CL3(과장~차장) 직급으로 승진한 뒤 불만이 생겼다. 직급이 높아진 뒤 연봉 인상률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김 프로는 “똑같이 EX를 받아도 연봉 인상폭이 적어져 열심히 일할 의욕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성과평가로 연봉 인상률 정한다
16일 전자업계에 따르면 김 프로 같은 사례는 이제 삼성전자에서 찾아볼 수 없게 된다. 내년 인사제도 개편에 따라 직급이 전면 폐지되고, 온전히 성과로만 연봉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사진)의 ‘뉴 삼성’이 본격 닻을 올리기에 앞서 전반적인 생산성을 끌어올리려는 차원으로 풀이된다.

이번 인사제도 개편의 골자는 연차보다 성과를 우선으로 대우해준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삼성전자는 매년 두 차례 직원들의 성과를 ‘EX, VG(very good), GD(good), NI(need improvement), UN(unsatisfactory)’으로 평가한 뒤 연봉등급을 ‘가, 나, 다, 라, 마’로 매겼다. 여기에 직급별 기본연봉과 기본인상률이 더해져 연봉 수준이 결정됐다. 같은 직급이어도 연차가 오를수록 임금도 높아졌다.

앞으로는 매년 1회 성과평가로 연봉 인상률이 정해진다. 대신 연봉등급에 따른 인상률이 지금보다 높아질 전망이다. 현재 성과평가에서 EX 등급을 받고 연봉등급 ‘가’를 받으면 연봉이 10% 정도 상승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으로 평균보다 우수한 ‘가’와 ‘나’ 등급의 상승률은 더 커진다. 그 대신 4년마다 연봉테이블을 갱신해 지나친 연봉 격차는 줄이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연차가 낮은 직원이 고연차 직원 연봉을 앞지르는 사례가 생겨날 수 있다. 부장급 직원이 4년 연속 평균 이하 연봉등급을 받고, 차장급이 높은 평가를 받으면 연봉이 역전되는 상황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성과평가가 중요해진 만큼 평가 방식도 업그레이드한다. 지금까지는 부서장만 직원들의 성과를 평가해왔다. 앞으로는 동료평가를 연봉등급에 반영한다. 프로젝트를 함께한 동료 중 두 명이 다른 한 명의 성과를 평가하는 방식이다. 기존에도 직원들이 동료와 부서장을 평가하는 제도는 있었지만 실제 연봉등급에 영향을 미치진 않았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부서장이 연공서열에 따라 성과를 달리 주거나, 편애하는 직원만 성과를 높게 주는 등의 병폐를 없애기 위한 취지”라고 설명했다.
IT기업처럼 민첩한 조직으로
삼성전자에서는 이번 인사 개편을 통해 인사 적체를 해소하고, 사내 우수 인력 유출을 방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전자는 입사 20~25년차에 해당하는 CL4 직급의 인사 적체가 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새 인사제도에서는 연차가 높은 저성과자들의 연봉이 더 이상 오르지 않는다. 다만 성과가 높은 직원들에게 보상이 돌아가기 때문에 정보기술(IT)업계로 이직하려는 젊은 직원들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고연차 저성과자들도 새 인사제도에 자극받아 생산성이 높아질 수 있다.

직급이 폐지되면서 연차가 높은 순으로 임원을 달아주던 관행도 사라질 것으로 관측된다. 성과에 따라 임원 승급이 이뤄지면 30~40대 젊은 임원이 속속 등장할 것이란 예측이다. 그 대신 승진에 욕심이 없는 직원들은 승진 누락 걱정을 덜 수 있다.

반면 바뀐 성과관리 체계로 인해 삼성전자 내 세대 갈등이 빚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지금까지 삼성 내부에서는 부서장이 연차가 높은 직원에게 성과평가를 잘 주는 경향이 있었다. 앞으로는 연공서열대로 성과를 평가했다가는 직원들이 반발할 공산이 크다. 현재 시니어 직원들은 자신들이 주니어 땐 성과를 희생했는데 정작 고연차가 되니 혜택을 받지 못하는 ‘낀 세대’가 됐다고 토로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배종태 KAIST 경영학과 교수는 “구글 등 IT 기업들의 조직문화가 민첩한 이유는 직급이 없기 때문”이라며 “삼성전자의 이번 인사제도 혁신을 통해 조직문화가 유연하게 바뀔 수 있어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말했다.

이수빈 기자 ls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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