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미래 재정, 진지한 논의 필요한 때

입력 2021-11-17 17:13   수정 2021-11-18 00:11

최근 전 국민 방역지원금 지급을 둘러싸고 여당과 기획재정부 간 힘겨루기가 한창이다. 전 국민의 일상 회복을 위해 현금지원이 필요하다는 여당의 입장과 재정기준과 원칙을 준수하겠다는 기획재정부의 입장이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다. 아직 재정여력이 충분하다는 여당과 그렇지 않다는 기획재정부, 둘 중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 쪽은 어디일까?

국제통화기금(IMF)이 지난달 발간한 ‘재정점검보고서(Fiscal Monitor)’에 따르면 한국의 일반 정부 부채는 2021년 국내총생산(GDP)의 51.3%로 IMF 기준 선진국 35개국 평균인 83.2%보다 상당히 낮은 수준으로 25위를 차지했다. 일견 아직도 재정 여력이 충분하다는 여당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듯 보이지만 이들 국가를 기축통화국과 비기축통화국으로 나눠 보면 상황은 달라진다.

미국 달러화, 영국 파운드화, 일본 엔화, 유로화 등 국제 단위 결제나 금융거래에 통용되는 기축통화는 안전자산으로 간주되고 국제적인 수요도 뒷받침되므로 기축통화국은 국가부채를 상대적으로 높게 유지할 여력이 있다. 반면 비기축통화국의 경우 국가부채가 크게 증가하면 국가신용도가 하락하거나 환율이 상승하며 금융시장 불안이 초래될 수 있으므로 대체로 기축통화국에 비해 국가 부채비율이 낮다. IMF 기준 35개 선진국 중 기축통화국인 25개 나라의 2021년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 평균은 94.1%로 한국보다 훨씬 높지만, 나머지 비기축통화국의 평균 국가부채 비율은 55.8%로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국가부채 규모보다 더 주목해야 할 점은 그 증가 속도다. 2012년부터 2021년까지 GDP 대비 국가부채의 평균 증가율을 계산하면 한국은 35개 선진국 중 무려 4위에 해당한다. 또한 향후 5년간 이 비율의 예상 증가 속도는 홍콩을 제외하면 35개국 가운데 가장 높아 2026년에는 한국의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비기축 통화국 평균 부채비율을 10%포인트 상회할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나라 재정건전성에 빨간불이 켜졌다는 의미다.

특히 최근 국가부채의 급격한 증가세는 코로나19라는 특수한 상황에 기인한 바가 크나 경기 회복과 함께 재정건전성도 개선될 것이라고 안이하게 생각해선 안 되는 이유가 있다. 바로 한국의 고령화가 매우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0년 7.2%였던 총인구 대비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율은 2020년 15.7%로 두 배 이상 늘어났는데, 이 고령화 속도는 같은 기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가운데 1위다. 또한 OECD는 2040년 한국 고령인구 비중이 총인구의 3분의 1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경제활동에 따른 세수는 줄어드는 반면 노인복지 예산 지출은 급격히 증가해 정부 부채는 마냥 늘어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우리 경제가 더 이상 빠르게 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경제성장률은 정부 세수 증가율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고 이자율은 국채에 대한 이자 지급액의 증가세를 결정하므로, 이자율보다 경제성장률이 높을수록 정부의 채무상환능력이 개선되고 재정여력이 증가한다. 한국 경제가 외환위기 이전과 같이 매년 10% 가까이 성장한다면 현재의 국가부채 증가세나 급격한 인구 고령화도 재정건전성에 큰 위협은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4~5%대로 낮아진 연간 실질 경제성장률은 2008~2009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3%에도 미치지 못한다. 조만간 저금리 기조가 종식돼 경제성장률이 금리보다 낮은 상황이 지속되면 지금의 정부 부채 증가 속도가 재정위기로 이어질 가능성도 간과할 수 없다.

국가부채는 미래세대가 갚아야 할 빚이다. 코로나19로 촉발된 경기침체의 긴 터널을 벗어나면서 이제 국가부채를 점진적으로 줄여 나갈 방법에 대해 고민할 때다. 대선 후보들의 공약 경쟁이 본격화되면 미래 재정에 대한 진지한 논의도 활발해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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