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직급 체계를 줄이려는 움직임이 2000년부터 일었다. 대기업 가운데 CJ그룹이 먼저 모든 직급을 ‘님’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SK그룹은 부장 이하 직급을 단순화하면서 상무·전무 등 임원 직급까지 부사장으로 통일했다. 카카오는 2014년부터 전 직원의 호칭을 영어이름으로 불렀다. 쿠팡은 영어이름과 우리말 별명을 함께 썼다.
삼성전자도 2017년부터 기존의 7단계를 ‘CL1~CL4’의 4단계로 줄이고 호칭을 ‘님’ ‘프로’로 바꿨다. 신한카드와 BC카드는 ‘님’으로 통일했다. 하나은행은 임원을 상무, 부행장으로 줄이면서 전무 직급을 없앴다. LS일렉트릭은 내년부터 기존 직급을 모두 ‘매니저’로 통합해 단일 직급으로 바꾼다.
기업이 직급을 단순화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의사결정을 빠르게 하고, 수평적인 조직문화를 만들어 인재 유입을 촉진하며, 인사 적체를 해소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직급이나 호칭을 바꾼다고 조직문화가 금방 달라지는 건 아니다. 의사결정 과정과 일하는 방식, 보상 등을 함께 개선해야 효과를 볼 수 있다.
직급 파괴에 나섰다가 회귀한 사례가 많다. KT는 2009년부터 5년간 직급 대신 ‘매니저’라는 호칭을 사용했지만, 2014년 ‘사·대·과·차·부’ 체제로 돌아왔다. 한화도 2012년 사원을 ‘씨’, 대리~부장을 ‘매니저’로 부르도록 했다가 3년 만에 이를 폐지했다. 호칭 빼고 달라진 게 없다는 불만이 제기된 데다 경직된 의사결정 체계가 바뀌지 않은 탓이다.
미국이나 유럽의 선진 기업들은 대부분 조직 내 직급과 직책보다 프로젝트 중심의 직위를 중시한다. 연봉도 업무 성과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사람이 아니라 직무 중심으로 조직문화를 바꿔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직급체계 변경에 따라 채용, 업무, 부서 배치, 보상 등으로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의 조언을 한마디로 줄이면 ‘기업문화는 수평적, 업무 실행은 수직적!’으로 요약할 수 있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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