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사람 그 누구도 관심 없던 스포츠를 한국에 전파한 이는 미국의 체육지도사 반하트(1889~1942)였다. 한국인에게 ‘반하두’로 불린 그는 1916년 YMCA 실내체육관 운영책임자로 임명돼 한국 땅을 밟았다.
《스포츠맨십의 전도사-반하트》는 반하트가 1940년 미국인 강제 철수령이 내려질 때까지 24년 동안 한국에 스포츠를 전파하려고 분투한 나날들을 보여준다. 언론인 출신 예술경영인인 저자는 반하트가 남긴 보고서, 그의 장녀와의 인터뷰 등을 복기하며 일대기를 썼다. 저자는 “반하트는 53년 생애 중 절반을 한국을 위해 봉사했다”며 “운동 불모지인 한국을 바꾼 그의 일생을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책에 따르면 YMCA 체육선교사로 온 반하트의 짐가방에는 농구공, 배구공, 야구공 등이 들어 있었다. 체육을 통한 선교에 대한 그의 열정을 보여주는 일화다. 반하트가 가장 공들여 전하려고 했던 건 ‘스포츠맨십’이다. 그가 알려주기 전까지 한국 땅에선 없던 개념이었다. 학생들은 질 것 같으면 경기를 포기하기 일쑤였다. 승자가 패자를 조롱하다 패싸움으로 번지는 것도 다반사였다.
그는 두 가지 원칙을 학생들에게 강조했다. 승패를 떠나 경기를 끝까지 치르고, 속임수 없이 정정당당하게 경쟁하라는 것. 반하트는 1923년 한국 선교사들이 발간하던 ‘코리아 미션 필드’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게임하는 게 표준이 되기 시작했다”며 “경기를 관리하는 조직이 발전하고 시민들의 사회적·도덕적 책임감을 인지한 사람들의 연령대도 급속히 낮아지고 있다”는 글을 남겼다.
그가 전한 것이 스포츠만은 아니다. 반하트는 1930년대부터 서울YMCA의 업무를 총괄하며 농민들을 대상으로 선진 영농법을 전수하고, 학생들에겐 직업 교육을 했다. 저자는 “반하트는 희망을 잃은 식민지 국민에게 체육을 통해 활력을 불어넣고, 실업 교육과 농민 운동에도 힘썼던 봉사인이었다”며 “한국을 ‘제2의 조국’으로 여겼던 그의 유산은 오늘날 우리 사회 곳곳에 새겨져 있다”고 역설한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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