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만난 오동욱 한국글로벌의약산업협회 회장(한국화이자 사장·사진)은 “건보 재정을 살리기 위해 환자를 희생시키는 건 앞뒤가 바뀐 것”이라며 “한시가 급한 중증환자용 혁신 신약에는 즉시 건보 혜택을 준 뒤 추후 평가·정산하는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올 2월 회장에 취임한 뒤 어떤 일을 했나.
“혁신 신약이 더 많이 쓰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힘썼다. 획기적인 신약이 나와도 대다수 환자에겐 ‘그림의 떡’이기 때문이다. 25억원짜리 신약 ‘졸겐스마’(노바티스)가 대표적인 예다. 환자의 90%가 두 살을 넘기지 못하고 사망하는 척수성 근위축증을 완치할 수 있지만, 쓸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건보가 도와주지 않으면 답이 없다.”
▷다 해줬다간 건보 재정이 거덜 날 텐데.
“‘막 쓰자’는 게 아니라 ‘쓸 데는 쓰자’는 거다. 살릴 수 있는 약이 있는데, 돈 문제로 나 몰라라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렇게 아낀 돈으로 이자놀이를 할 것도 아니지 않나. 그렇다고 비용 대비 효과가 적은 약까지 건보가 품을 여력은 없다. 이런 점에서 ‘신속등재제도’를 검토해볼 만하다. 혁신 신약에 먼저 건보 혜택을 주고 나중에 경제성 평가를 하는 것이다. 경제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오면 그동안 쓴 건보 비용을 제약사 등으로부터 돌려받는 방식이다. 독일 영국 프랑스 등이 도입했다.”
▷제약사가 약가를 낮추면 되지 않나.
“혁신 신약을 손에 넣으려면 10~15년이란 시간과 수조원의 자금을 쏟아부어야 한다. 민간기업이 손해 보면서 개발할 수는 없는 일이다. 적정 이윤이 보장되지 않으면 신약은 나올 수 없다. 졸겐스마 가격이 25억원인 건 환자 수가 적어서다. 연구개발에 큰돈을 썼는데, 환자는 별로 없으니 비쌀 수밖에. 그나마 한국은 미국 영국 이탈리아 일본 등 선진 7개국에 비해 보험 약가가 절반에 불과하다. 더 낮추기는 힘들다.”
▷글로벌 제약사들이 한국에 약만 팔고 투자는 안 한다는 비판이 있다.
“많은 글로벌 제약사가 한국을 아시아 임상 허브로 키우고 있다. 임상은 신약 개발의 핵심 과정으로 상당한 돈이 든다. 화이자도 지난 10년간 한국에 3000억원가량을 투입했다. 한국이 훌륭한 임상 인프라를 갖추는 데 글로벌 제약사도 한몫한 셈이다. 요즘에는 우수 인력과 기술로 무장한 한국 바이오기업에 투자하거나 파이프라인(신약 후보물질)을 사들이려는 글로벌 기업이 늘고 있다. 화이자도 수시로 모니터링한다.”
▷화이자가 코로나19의 승자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은.
“화이자는 몇 년 전 세상에 없는 혁신 신약 개발에 ‘올인’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2025년까지 혁신 신약 25개를 내놓을 계획이다. 그 결과가 메신저리보핵산(mRNA) 코로나19 백신이다. 다양한 분야를 준비한 만큼 다른 팬데믹이 왔더라도 화이자가 백신과 치료제를 내놨을 것이다.”
▷한국에서도 글로벌 제약사가 나올까.
“몇 년 전만 해도 한국에서 빌보드 1위 뮤지션(BTS)과 아카데미 작품상(기생충)이 나올 거라고 누가 생각했나. 제약바이오에서도 이런 싹이 움트고 있다. 셀트리온은 코로나19 항체치료제로 유럽을 뚫었고,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모더나 코로나19 백신 위탁생산을 따냈다. 머지않아 혁신 신약 분야에서도 강자가 나올 것이다.”
오상헌/이선아 기자 ohyea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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